한국

114 / 삶을 바꾼 만남 - 정민 지음

최해식 2014. 6. 14. 23:52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는 가르침을  정학연은 면학문 이라고 하고  황상은 삼근계 라고 불렀다.

"나는 부족하다. 출신이 양반도 아니고,집안은 가난하며,머리도 남보다 좋지 않다. 하지만 부지런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나보다 나은 조건을 갖춘 사람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룰 수가 있다" -39-

1803년 11월 10일에 쓴 글이다. 쏜살같이 또 한 해가 지나 동짓날을 맞았다. 갑자년(1804)이 열리고 있었다. -53-

 

불면의 밤. 그는 늦도록 잠을 못 이룬 채 오도카니 앉아 있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달이 산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민다. 고작 저 멧부리 하나 넘어오느라 긴 밤을 다 보낸 눈치다.  그나마 기운 잃은 창백한 조각달이다.  그 앞의 긴 강물을 미처 건너기도 전에 그만 날이 새어, 제풀에 빠져 가라앉고 말 것만 같다.-93-

 

공부는 밥 먹듯이 해야 하는 법이다.  숨 쉬듯이 하고, 습관처럼 해야지.  내가 그렇게 두고 두고 일렀거늘.-139-

 

"임금의 엄명을 받았다고 생각해라.  뒤에서 장수가 칼을 뽑아들고 돌격 명령을 내렸다고 여겨라.  뒤에서 호랑이가 쫗아온다면 어찌하겠니?  공부는 그런 다급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조금의 방심 없이 몰두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마나다." -143-

 

풍성한 계절이라 낯선 땅이 문득 고향 같다.  거울 속에서 세월에 스산하게 늙은 중년의 사내가 나를 본다. -162-

 

뎅그렁 우는 새벽 종소리에 잠을 깬 창밖에 달빛이 희붐하다.  스님이 다시 목어를 두드린다.  깨어 있으라.  잠들지 마라.  그 소리에 남은 잠이 확 달아난다.  도선법은 禪(선) 속으로 숨는 방법이다.  달빛은 자욱한 구름에 잠기고, 목어 소리가 새벽을 깨우는 산사.  부들자리는 안온해서  매서운 추위를 느낄 수 없다.  내다보면 잔설 위 싸라기눈이 소금을 뿌린 것처럼 희다. -183-

 

혜장은 하는 말마다 금가루를 사방에 뿌리는 듯 황홀 했다.  -198-

 

"닭을 치는 일도 일종의 공부다.  그저 하지 말고 살펴서 해라.  책 찾아서 읽어가며 해라.  보는 것 정리하고 메모해가며 해라.  여러 책에서 닭에 관한 내용을 초록해서 갈래별로 묶어  <계경>을  엮어보는 것은 어떻겠니.  이렇게 하면 또 하나의 근사한 책이 될 게다.  어떤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네 삶의 모든 부분을 공부의 과정과 일치시켜라.  세상 모든 일이 공부 아닌 것이 없다." -223-

 

격물치지의 공부법  -   작은 의문을 찾아 조사하고 또 조사하여 조목조목 정리해서 한 권의 작은 <사전>을 만드는 것 처럼 작은 공부가 차곡차곡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231-

 

(베껴쓰기)   산 중턱에 야트막한 가림벽으로 경계를 둔 작은 초가집.  울타릿가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붉은 꽃을 피웠다.  봄빛이 그림같이 곱다.  차 달이는 화로에 연기조차 스러지고, 산칡이 똬리를 튼 길 위로 일없어 심심한 햇볕이 논다.  무료함을 못 견딘 꿩이 돌연 깍깍깍 울어대는 통에 달게 든 낮잠을 깨니, 이것은 여름날 풍경이다.  비가 와서 연못 위에 수천 개의 동심원이 자울거린다.  빗방울을 먹이로 알고 새끼물고기들이 주둥이를 들고 입질을 한다. 저녁밥을 두어 숟가락 떼어두었다가 난간에 앉아 수면 위로 던져준다. 그들의 발랄함이 부럽다.-304-

 

치자는 서리에도 잎이 시들지 않는다.  눈 속에도 푸름을 지켜낸다.  재목감은 못 되어 나무꾼이 거들떠보지 않으니 제 삶을 지켜갈만하다.  무엇보다 꽃 하나에서 하나씩의 열매를 맺는다.   행함이 있으면 반드시 결실을 맺으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꽃은 희어 고결하고 씨의 알맹이는 노란빛으로 꽉 차 있다. -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