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생활] -9-
- 홀에서는 장사꾼과 농부들이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채 우적우적 만두를 씹고 있는 공간에서, -15-
- 엄마는 그걸 물에 불린 뒤 광목으로 싸 '짤순이'에 넣고 돌렸다. 짤순이는 탈수 기능만 되는 날씬한 금성 세탁기였다. -19-
- [침이 고인다] -45-
- 그녀는 천천히 껌 조각을 씹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눕는다. 입 안 가득 달콤 쌉싸름한 인삼껌의 맛이 침과 함께 괴었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괸다. -80-
- [자오선을 지나갈 때]-117-
-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4인실은 너무 좁아, 네 명 모두 책상 위에 의자를 올린 뒤 연필처럼 자야 했다. - 여기저기서 부르르--부르르-- 하는 삐삐 진동음이 들려왔다. 이쪽에서 저쪽에서, 때론 간헐적으로 때론 연이어서, 마치 풀벌레가 소리 죽여 울듯. 우리 모두가 한 마리 풀벌레들인 양. 어둠 속 파란 불빛들이 깜빡거렸다. -128-
- [칼자국] -151-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151-
- [기도]-183-
-휴대전화 문자 전송 완료를 기다리는 순간에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제 주소를 찾아가는 활자의 이동이 어떻게 가능한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천만 명이 수천만 개의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데, 어째서 이 사람의 '미안하다'와 저 사람의 '괜찮다'는 부딪치지 않고 온전히 상대방의 단말기로 미끄러져갈 수 있는 걸까.-184-
- [네모난 자리들]-215-
-먼 곳에서, 나이를 많이 먹은 해가 또 한 번의 나이를 잡숫느라 고꾸라지는 동안, 산동네 위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어머니는 10년 젼에 오른 길을 하나도 까먹지 않았는지, 오르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오르내렸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미로 같은 길을 더듬어 갔다.나는 어머니를 따라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오르내렸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216-
- 어머니는 셋방의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갚을 순 없어도 잊어선 안 되는 일들이 있다고, 어머니는 무릎에 힘을 주며 계단을 올랐다. -217-
- 우리 앞에 펼쳐진 골목. 선배는 바지런히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오르내렸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미로 같은 길을 더듬어 갔다, 나는 선배를 따라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오르내렸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새처럼 지저귀고 있었다. -229-
- 감사하다. 내 곁에 늘 누군가가 있어 주었기 때문이다. 감사하다.
그 누군가 때문에 나는 늘 빚지고, 감동하며 살아간다. 겸손이다. -308-
- 수록 작품 발표지면 ;
도도한 생활 [한국문학]2007년 봄호
침이 고인다 [문학사상]2006년11월호
성탄특선 [문학과 사회]2006년 여름호
자오선을 지날 때 [창작과 비평]2005년 겨울호
칼자국 [세계의 문학]2007년 여름호
기도 [아시아]2007년 여름호
네모난 자리들 [문학동네]2006년 가을호
플라이데이터리코더 [문학.판]2006년 여름호 -309-
-.......-309-끝. 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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