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78/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 - 이광희 지음.

최해식 2016. 11. 29. 22:26

-'사라' 또는 '사로' 로 불리던 나라 이름도  "덕이 날로 새롭고 사방을 망라한다." 는 뜻의  '신라'  로 고쳤다. -50-


-4세기의 백제 근초고왕 때 시작된 삼국 전쟁은 5세기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장수왕을 거쳐 6세기 신라 진흥왕 대에 이르러 일단락되다.-51-


-신라는 532년 법흥왕 때 김해 금관가야를 병합했는데,

이때 가야 왕 김무력은 신라에 귀순했다. ................... 김무력의 가장 큰 공은 삼국 통일 전쟁의 일등공신인 김유신을 손자로 두었다. -52-


-홍유,신숭겸,배현경,복지겸이 '왕건' 을 찾아와 말했다.

"기회는 만나기 어렵고 놓치기는 쉽습니다.

하늘이 이처럼 기회를 주시는데, 망설이느라 받지 않으면 도리어 하늘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  -105-.


-1018년 거란의 3차 침입에서  맞붙은 두 나라의 장수는 '강감찬' 과 '소배압' 이었다.  두 나라 군대가  처음 맞닥뜨린 곳은 흥화진이었다.

흥화진은 강동 6주의 하나로 성 동쪽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감찬은 쇠가죽으로   이 강의 상류를 막아, 물을 터뜨려  보내 거란 군을 크게

이긴 이 전투를 우리는 흔히 귀주 대첩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확실히 말하자면 흥화진 전투이다. -123-



-북쪽에서는 몽골 군이 압박해오고 남쪽에서는 고려 군이 공격하자,

 거란족은 항복하고 물러갔다.  거란족을 협공으로 물리친 고려와  몽골은 이때 처음 외교 관계를 맺었다. (1219년)

200년여 년 전에는 거란에,100여 년 전부터는 여진족의 금나라에 조공을 바쳤는데,이번에는 몽골이라니........고려는 기분이 나빴지만,어쩔 수 없엇다. -130-


-몽골은 당시 중국 북쪽 지방을  차지하고 있던 금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배후에 있는 고려를 복속시킬 계획을 이미 세우ㅏ워 놓고 있었다.

.......1231년에 시작된 전쟁은 1259년 고려가 항복할 때까지 30년 동안이나 계속되엇다. 이 기간에 몽골은 무려 아홉 차례나 고려를 침공했다. 몽골이 침략은  이전까지 고려가 겪었던 어떤 전쟁보다 더 참혹했다. 고려 시대뿐만 아니라 5천 년 역사르 통틀어 가장 잔인하고 파괴적이었다. -131-


-1206년 몽고 부족을 통일한 '테무친'은 몽골 제국을 건설하고 최고 권력자인 칭기즈 칸(1162~1227)이 되었다...........그리고 마침내 동아시아에서 시작해서 남아시아와 서아시아를 거쳐  동유럽까지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를 만들엇다.   당시 몽골 제국은 "우리의 공격 앞에 항복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

이러한 몽골 제국 바로 옆에 고려가 아직 정복당히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132-


-1231년 몽골 군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입했다.

1232년 몽골 군의 2차  침입 때 고려 군과 몽골 군이 가장 치열하게 맞붙은 곳은 처인성(용인) 이었다. 총사령관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골 군이 수원을 지나 처인성에 다다랐을 때 성안에는 천민취급을 받던 백성들이  살고 잇엇는데,그곳 주민들을 이끄는 장수는 김윤후 라는 승려였다. 주민들잉 사력을다해 몽골 군에 저항하는 가운데 김윤후는 화살을 쏘아 살리타이를 죽였다. 얼떨결에 장수르 잃은 몽골 군은 싸울 의지를 잃고 철수 했다. ...............하지만 몽골군잉 물러간 자리에는 끔찍한 파괴의 흔적만 남았다.  경상도까지 밀고 내려간 몽골 군은 대구 '부인사'에 보관중인던 초조대장경을 불태웠다. 초조대장경은 200여 년 전 거란의 침입 때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겠다는 염원을  담아 목판에 새긴 불경이다.-136-


-몽골 군의 2차 침입때 충주성에 있던 양반들은 몽골 군이 공격해 오자 양반들은 모두 도망쳤다.  결국 노비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힘겹게 몽골 군을 무리쳤다. 그런제 몽골 군이 물러나자 양반들이 슬금슬금 돌아오더니 "성 안에 있던 재물이 없어졌다"  며 노비들을 처벌하려하자 하가 난 노비들이 봉기를 일으켜 관리들을 죽였다. 이처럼 세계 최강의 몽골 군이 침략한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농민을 수탈하는 개념 없는 관리가 많았다. 그래서 백성들 중에는 몽골 군에 투항하는 자가 늘었고 심지어 몬골 군의 2차 침입 상황을  기록한 [고려사] 에는 '몽골 군이 오는 것을 반겼을 정도'  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137-


-살리타이를 잃은 몽골은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1235년 다시 고려를 3차 침략 했다.........경기도를 지나 충청도,경상도,전라도까지 고려의 전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 와중에 신라 때 창건된 최대 사찰 황룡사가 불에 탔다. ..............[고려사]에는  1254년 6차 침입 당시 '몽골 군에 사로잡힌 백성이 20만68000명,살육된 사람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138-


-고려와 원나라( 쿠빌라이 칸은중국을 통일하고 원으로 국호를 고쳤다) 연합군은 1271년에 진도를 공격하여 당시 삼벽초를 이끈 지도자 '배중손'이 죽자 삼별초는 '김통정' 의 지휘아래 다시 제주도로 근거지옮겼다. 그러난 1273년 여몽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무너지고 말았다. 이로서 마직으로 남았던 몽골 저항 세력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143-


-1273년 삼별초의 항쟁잉 종결되자 고려는 완벽하게 몽골에 복속되었다.그때부터 약 100년동안 고려는 우너나라의 지배를받앗다..............

고려의  왕도 자기들이  정했다. 왕이 되려면 어릴 때 원나라에가서 지내다 원나라 공주와 결혼해야 했다. 이렇게 왕이 된 고려 왕만 해도 충렬왕부터  공민왕 까지 모두 일곱 명이다.이시기 왕의 이름 앞에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충'자를 붙였는데,실제로 그들은 원나라에 충성르을 다했다........... 시기에 고려 백성들은 힘들게 살아갔으나 그중에 오히려 부원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부원 세력이란 원나라에 빌붙어 부와 권력을 누린 친원파를 가리키다.  일제 강점기에 빗대어 말하자면 뼛속까지 일본을 사랑했던 친일파와 비슷한 족속들이다.

부원세력 중에는 몽골 군의 고려 침략때 앞잡이 노릇을 하다 원 간섭기에 부귀를 누리 '홍다구' 같은 사람도 있엇다. '홍다구'의 자식들은 대대로 부원세력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았다. 친일파의 후손들잉 대대로 부귀영화를 눌리는 것과 그다지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100년 동안 이어진 원나라이 지배는 공민왕이 고려에 귀환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145-



-세계 최강 몽골 군에 정복당히지 않은 나라는  일본과 베트남이다.

일본은 1274~1281년이다. 베트남은 1285~1288년이다.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10세기 이후 송,원,명,청 등 중국의 침략을 모두 물리쳤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미국과 맞붙어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다. 결국 베트남은 몽골과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로 되었다. -147-


-일본이 내세운 명분은 '가도입명' 또는  '정명가도'  이다.

명나라를 치러 갈 테니, 조선은 길을 내 달라는 뜻이다.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은 자신들이 아버지의 나라로 떠받드는 명나라를 정벌하겠다는 도요토미의 발상에 경악했다. 있을 수도 없고,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152-


-일본에서는 성을 점령하면 패한 장군이 항복을 하거나  할복을 했다. 그러면 그 지역과 백성들은 그대로 점령자의 차지가 되는 식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국왕은 '골 먹을 위기에 처하자 골대를 가지고 도망을 가는'예상치 못한 길을 선택해 일본 군을 난감한 상황에 빠뜨렸다. 

선조는 임진

강을 건너 개성으로, 대동강을 건너 평양으로,청천강을 건너 의주까지 발바닥에 땀나도록 열심히 도망쳤다.-156-


흥선대원군의 집권기인 1863~1873년 사이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었다.......... 쇄국정책만을 고수하는 바람에 ㅇ히려 일본에 침략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

일본을 섬나라 왜구라고 깔보다가 임진왜란을 겪었고, 여진족을 무시하고 배척하다가 병자호란을 당했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205-



-의열단은 일제 식민통치 기구 파괴와 일본 관리 암살,친일파 처단 등을 목적으로 '김원봉' 이 만들었다.

한인 애국단은 임시 정부의 항일 투쟁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김구'가 조직한 단체이다. -241-


-북한군은 전쟁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전쟁 전 이승만은 무력으로 북진 통일하자고 공공연하게 주장했었는제 막상 전쟁이 터지니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그때의 모습은 마치 청나라를 오랑캐라 얕보다가 막상 침입하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병자호란 당시의 인조를 떠올리게 한다. -255-


-265-끝.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