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 한승원 지음

최해식 2014. 7. 28. 22:41

.-식영정息影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이다.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의 주무대가 되는 정자이다.  .........   식영은  '그림자를 쉬게 한다 ' 는 뜻이다.   무위자연을 가르친 <장자>의 ' 어부편 '에 나오는 우화에서 가져온 말이다. 

그림자를 두려워한 사람이 있었다.  그림자,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역정 속의 희로애락과 어찌힐 수 없는 자기 삶의 가증스러운 탐욕의 궤적이다.  그궤적(그림자)을 남기지 않으려고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러나 그림자는 그 주인이 살아 있는 한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 그림자는 숲 그늘 속에 들어가자 없어지고, 그림자의 주인은 비로소 편안해질 수 있다.  그림자(삶의 궤적)는 세상에 몸을 드러내고 활동을 할 때 주인을 괴롭히지만, 도가적인 은둔과 초월의 삶, 무위자연의 삶을 살 때 사라지는 것이다.  식영정은 탐욕스러운 그림자(가증스러운 삶의 궤적)를 없어지게 하는 정자라는 것이다. -44-

-산을 보면서 기상을 키우되 물을 통해서 가라앉힐 줄 아는 힘을 길러야 한다.  사람은 산을 등지고 살면서 물을 앞에 두고, 물에 산이나 숲 그림자가 잠기는 것을 보고 살아야 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가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기와 만나 절차탁마하는 곳이 연못이다.  정자에는 탐욕을 가라앉히고 자연에 '절로절로' 친화하려고 애쓰는 의지와 다시 기회를 엿보아 탐욕을 쟁취하려는 의지가 공존해 있다. -55~ 56-

-무등산은 자기만한 높이와 부피와 뿌리로 뽑아 올린 음기를 기운차게 발기한 남근처럼 하늘의 치마폭 속에 투사하고, 하늘은 무등산과 그 주변 땅이 받을 만한 양기를 빛줄기로 쏟아 놓는다.  그 위대한 산과 하늘만 알고 있는 음험한 교통 교감 앞에서 나는 진저리를 친다.  .......

......  무등산의 봄은 연두색의 새싹이 돋아나면서부터 시작되는데 불타는 듯한 연분홍 철쭉꽃이 5월 하순쯤 활짝 피어나면서 기암절벽과 함께 황홀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여름에는 각종 활엽수가 무성해진다. 

원효사의 계곡에는 천연의 개울들과 작은 폭포들이 많다.  그것들은 광주천으로 모아졌다가 영산강으로 흘러간다.  가을에는 억새풀이 어우러진다.  입석대의 돌기둥 사이의 관목과 담쟁이넝쿨들이 빨갛게 물든다.  울긋불긋한 병풍을 펼쳐 놓은 듯싶다.

무등산은 흰 겨울옷을 입고 있을 때 신화 속의 존재로 변신해 버린다.  두등산의 눈꽃송이는 찬 새벽 공기가 만들어 낸 신비로운 자연의 걸작이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에 녹았다가 다시 새벽에 얼곤 한다.  그러면 고드름이 얽혀 새하얀 예술 작품이 된다. -60~ 61-

-알은 어느 겨울 흰 눈이 내릴 때, 어느 봄날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릴 때, 어느 한 여름의 저녁노을이 피처럼 타오를 때, 낙엽들이 들쥐떼처럼 땅바닥을 구를 때 껍질을 벗고 새가 될 것이다.-65-

-1894년 이후 100년 동안,  '동학란 ' 으로 불리던 것이 이제는  '동학농민혁명 ' 으로 불린다.  역사는 그냥 기록되는 것이 아니고 민중들의 의지에 의하여 창조되는 것이다. -97-

-고산준령 같은 학문과 고고하게 산 군자들의 의기가 '서원 ' 안에 화석처럼 내장되어 있고  그 학맥은 백두대간처럼 굽이굽이 이어진다.  백두대간에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포도송이처럼 주저리주저리 달려 있다.  그 한 개 한 개의 산은 나름대로 터득하고 실천한 정심의 거대한 보석덩이들이다. 장성에 가서는 선조들의 학문 자랑하지 말 일이다. ....

...........     우리들의 삶은 순수해져야 한다.  드높은 담을 헐어 내고 누구든지 드나들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어 개방해야 한다.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위엄과 두려움이 넘쳐나는 착함이나 어짊은 이미 착함과 어짊이 아니다. -98~ 101-

-나주평야에 은색 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배꽃이 한꺼번에 필 무렵이면, 이 세상천지는 온통 배꽃의 그윽한 향기에 젖어 버린다.  배꽃 구경은 한낮에 해도 좋지만, 황혼 무렵이나 봄밤의 어스름 달빛 아래서 하면 더욱 좋다.  예전 우리 선인들은 시심이 깊고 그윽하고 두터워서 배꽃을 야반삼경에 구경하기를 즐겼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이뤄하노라. -131-

-나주 반남면의 고분군을 찾아가다보면 쪽풀 재배 단지 안에 쪽물염색문화관이 있다.

스승보다 제자가 뛰어났을 때,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한다.  ' 푸른 색깔이 쪽에서 나왔지만 쪽의 색깔보다 진하다 ' 는 그 말은 쪽이라는 풀에서 왔다.  ..........  

.....  나주에는 ' 샛골나이 ' 가 있다.  예로부터 길쌈이 유명했다.

여름철 밤하늘의 은하수 강변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있다.  직녀는 일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베만 짠다.  직녀의 남편인 견우는 은하수 건너편에서 소를 먹인다.  하느님이 그들 둘을 결혼시켜 주었더니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직녀는 베를 짜지 않고,  견우는 소를 먹이지 않았다.  큰 야단이 났다.  화가 난 하느님은 그들 둘을 은하수 양쪽 강변에 떼어 놓고 일 년에 한 번씩 7월 칠석에만 만나도록 통제를 했다.  7월 칠석은 여름철이라 홍수가 지곤 하여 그들이 은하수를 건널 수 없었다.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세상의 모든 까마귀와 까치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가서 다리를 놓아 건널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다리를 오작교라고 한다.

그 직녀의 넋이 나주의 샛골나이에 스며 있다. -156-

-나주 백룡산 산자락 밑에 '정도전 ' 유배지가있다.

삼봉 정도전( 1342년~ 1398년(태조 7) 는 조선왕조를 연 개국공신이다.  그는 ' 나주목 회진현 거평부곡 ' 으로 유배를 온 것이다.  

이성계의 첫째 부인 신의왕우 한씨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 모르게 아버지의 오른팔인 정도전을 살해했고, 왕자의 난은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오래지 않아 조선조 3대 임금,  태종 이 되었다.  

이방원이 실권을 잡은 조선조 초기에 그는 역적으로 남아 있었다.  조선조 후기, 고종 임금의 아버지 대원군이 실권을 잡았을 때에 와서야 그는 복권되었고, <삼봉집>이라는 문집이 남아 전한다. -159-

-함평의 대표적인 상표는 나비이다. 

나비가 무엇인지 알려면 <장자>를 읽어야 한다.

장자는 어느 날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자신이 장자인지도 모랐다.  그러다 문득 꿈에서 깨어났는데, 자신은 나비가 아니라 장자인 것이었다  장자는 생각했다.  아까 꿈에 나비가 되었을 때에 나는 내가 장자인지 몰랐다.  그런데 지금 꿈에서 깨고 보니 나는 분명 장자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딘 것인가.  지금의 나는 과연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

비유의 천재인 장자는 , 억지 바락바락 써 가면서 세상을 물리적으로 개조하겠다든지, 세상의 돈과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고 하늘을 잡고 뙈기를 치겠다고 덤벼드는 사람들에게, 그 억지스러움이 가치 있는 일이 아님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179-

-함평의 고분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일본인들의 행태에 몸서리를 친다.  일본인들은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을 때 한반도의 방방곡곡 어디어디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 이미 속속들이 탐사를 햇다.  그리고 장고형(전방후원형) 무덤들이 마한의 지배 세력의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네 야마토 정권의 실권자들이 조선 땅에 건너와 살았던 흔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이 광개토왕의 비문을 변조하여 자기들의 선조들이 조선 땅을 지배했었다고 주장하는 것, 독도가 자기네 땅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ㄴ서도 역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읽으면서 그것을 빼앗으려 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행태이다. -184-

-화순 동복은 방랑시인 김삿갓 시인 김병연과 인연이 깊다.  스스로 자기의 조상을 능멸한 것에 대한 회한과 세상에 대한 허무로 인하여 큰 삿갓을 덮어 쓴 채 방방곡곡 방랑의 삶을 산 김삿갓은, 화순 동복의 적벽강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화순에서 머물다가 1863년 동복면 구암리 창원 정씨 댁 사랑채에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그의 시에는 해학과 풍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213-

-백제 때에는 이곳, 영암에서 나고 자라 일본에 학문을 전해 주었던 분이 '왕인' 박사이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왔던 '최지몽' 이 또한 이땅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가 하면 기개와 풍류의 시인 '최경창' 이 월출산 아래서 나고 자랐다.

" 땅의 기는 산을 만들고,  산은 인물을 만들고, 인물은 세상을 살아갈 만한 가치 있는 세상으로 만든다. "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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