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노엘라의 초콜릿박스] '시간'을 기억하는 시간(2)
-머니투데이 2014.7.26 -
딱딱하기만 한 고체로 만들어진 시계가 치즈처럼 녹아 축 늘어져 있다. 그림은 마치 꿈속에서 본 듯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달리는 태양에 녹아내리는 까망베르 치즈에서 영감을 받아 초현실주의적 시각으로 작품을 그렸다고 말한다. 꿈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뛰어넘는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시간이란 개념은 꿈에선 감쪽같이 사라진다. 꿈에서 우린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내일을 먼저 경험하기도 하고,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꿈에서 시간은 그렇게 녹아 버린다.
현실에서 시간은 초단위로 흘러간다. 딱딱한 시계 바늘은 일정하게, 부지런히 움직인다. 한 방향으로.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도, 미래에 가볼 수도 없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일분 일초를 다투며 살아갈 뿐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계바늘만큼이나. 하지만 그렇게 굳어진 시간 안에 우리의 생각은 한자리에 머물지도, 시계처럼 일정하게 흘러가지도 않는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10년전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 생각을 한지 1초도 안되, 일주일 후를 걱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는 생각 속에서 공존한다. 생각 속에서 시간은 그렇게 유연하다.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유연함만큼이나 시간은 상대적이다. 같은 5분일 지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와 싫어하는 사람과 있을 때가 다르고,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 같은 음악을 들을 때 서로 체감하는 시간이 다르듯 시간은 절대적이 될 수 없다. 결국 시간이라는 것은 생각 안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과거가 현재의 기억에 비추어 현존한다면 기억이 지속되는 한 과거는 존재할 것이고, 같은 맥락에는 미래는 지금의 내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일 테다. ‘시간이 없어서’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현대인들. 우리는 어쩌면 이미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지금보다 갑절은 길어지지 않을까?
생각은 참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불가능해 보이는 시간조차도 말이다
<퍼온글> [노엘라의 초콜릿박스] '시간'을 기억하는 시간(1)
-머니투데이 2014.7.19 -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며칠 전 이야기다. 엄마와 언니는 더위를 날릴 팥빙수를 만든다고 부엌에 사이좋게 들어가더니 이내 옥신각신이다.
자세히 얘기를 들어보니 언니가 입에 넣었던 숟가락을 미숫가루 봉지에 집어넣었다고 엄마가 혼을 내신 것이다. 언니는 그게 아니라 자신이 먹던 숟가락과 미숫가루 봉지에 넣은 숟가락은 다른 것이었다고 변명을 한다. 엄마는 그럼 미숫가루에 묻어있는 이 물기는 뭐냐고 따지신다. 그러자 언니가 그것은 침이 아니라 새 숟가락에 묻어있던 물이었다고 주장한다. 엄마는 분명 언니가 입에 넣었던 숟가락을 미숫가루 봉지에 넣은걸 보셨다고 했고 언니는 아니라고 한다. 엄마가 잘못 보셨던지 언니가 착각을 한 것일 테다. 두 숟가락은 똑같이 생겼으니까.
진상규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곳엔 CCTV 도 없고 증인도 없다. 엄마와 언니의 미숫가루 사건은 그렇게 미궁 속에 빠진 채 종료되었다. 이로서 엄마와 언니의 머릿속에 각자의 과거는 서로 다르게 기록되었다. 모두 웃고 넘겼지만 한편 궁금했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누군가는 착각을 했다. 그러나 기억은 착각까지 고쳐서 기억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 착각은 사실이 되어 뇌리에 박힌다. 그리고 현재의 이 기억은 사실여부에 상관없이 과거로 기록된다. 각자의 머릿속에, 서로 다르게.
그 누구도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 과거를 볼 수도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찍이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는 지나갔으니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으며, 현재 역시 흐르고 있으니 없다." 그러면서 과거, 현재, 미래는 실은 모두 과거에 대한 현재, 현재에 대한 현재, 미래에 대한 현재로 모두 현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과거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현재의 생각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건에 대해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과거는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마도 이 해프닝은 엄마와 언니의 머릿속에서 지금쯤 모두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부터 1년쯤 뒤, 누군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는지도. 그렇다면 이날의 사건은 기억 속에서 영영 없어지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이것은 더 이상 과거가 될 수 없다.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니까. 그러니 기억되지 않는 과거는 과거가 아니고, 시간은 결국 시간이 아닌 기억일 뿐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영속성'이라는 그림 속 시계처럼 시간은 그렇게 녹아내리는 것인지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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