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47/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 - 이종각 지음

최해식 2016. 4. 7. 20:03

-0407대출함.4.9읽음.

-을미사변 :1 895.10.8 민비시해사건이다.

청일전쟁  : 1894.7월~1895.4월 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당시 일본에선 조선을 중국의 오랜 지배에서 독립시켜주었으므로 하루빨리 조선을 정벌하여 미개한 조선을 문명개화시켜야 한다는 征韓論이 더욱 힘을 얻고 잇었다. 이제 아시아에서 구미 열강과 견줄 수 있는 나라는 일본뿐이라는 기고만장의 분위가가 고조되어갔다.-14-

 

- 1896년2월11일 새벽, 고종과 왕태자가 궁녀용 가마를 타고 경복궁을 몰래 빠져나와 7시경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아관파천으로 불린다.

............국왕이 자신의 나라에 있는, 자신의 궁궐을 도망 나와 남의 나라 공관으로 피신하는 사태는 1392년 창건 500년을 넘긴 조선 왕조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얼마나 허약한 나라이고, 얼마나 나약한 국왕인가를 응변해주는 일이다. -139-

 

- 고영근이 있는 곳으로 때때로 본국에서 돈을 보내오는 일도 있는데 , 돈이 도착하면 냄새가 나는 물건에 파리가 몰려들 듯이 망명객들이 고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이 돈은 한국의 인삼회사로부터 나온 듯하다. 인삼은 한국 정부의 전매사업인 바, 즉 관변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02-

 

- 1894년 3월9일, 김옥균은 상하이로 가기 위해 도교 유락쿠쵸의 집을 나와 도쿄 시나가와 역에서 야간열차로 오사카로 향한다. -273-

 

- 김옥균은 일본 곳곳의 여러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다.

........일본 지도층 인사들은 김옥균 등 조선이나 중국에서 망명 온 인사들의 여성문제엔 비교적 관대했다. 당시 중국에서 일본에 망명해 있던 쑨원도 일본인 첩(아사다 하루淺田春) 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는 기록

(요시찰거동, 1901년 7월5일자) 이 있다.-275-

 

- 김옥균 관련의 발군의 역저는, 재일 사학가 금병동(1927~2008) 의  [김옥균과 일본 - 체일滯日의 궤적 ] 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283-

 

- 1924년 우장춘은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재직 중이던 와타나베 고하루渡邊小春라는 일본 여성과 결혼한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한 뒤 10여 년이 지난 시점인 당시, 조선인에 대한 와타나베家의 그 같은 편견과  차별은 일본 사회에 흔히 있던 일이었다. 시어머니인 '나카' 에게 순종했던 '고하루'  는 스스로 친정과는 절연한 상태로 지냈다. 그 절연은 1953년 '나카' 가 사망할 때까지 29년간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우장춘은 고하루와의  혼담을 아버지의 후원자였고 우범선 사후에도 장춘 일가를 돌보아주고, 아오야마 묘지에 있던 우범선의 묘까지 묘켄지寺에 이장해준 든든한 후견인인 '스나가'

에게 보고 했다. 그리고 '스나가' 의 양자가 되었다.  이같은 '스나가'의 제의는 일본 사회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322-

 

- 반쪽은 일본인, 반족은 조선인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자식들에게는 경험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장춘은 일본인 처 고하루와의 사이에 위로 딸 넷, 아래로 아들 둘의 4녀 2남의 자녀를 두고잇었다. ................장춘의 자녀들은 장춘 부부를 양자로 입적시킨 스나가의 성을 따 모두 스나가의 성을 가지게 되었고, 장춘은 자식들을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아가게 했다. 반쪽은 일본인, 반족은 조선인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자식들에게는 경험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딸들은 모두 일본인과 결혼했고, 두 아들은 '스나가'  란 성를 가진 일본인으로 각각 살아가고 있다.-326-

 

- 고종과 장 상궁과의 사이에 태어난 의친왕의 아들 '이건'  은 해방 후 일본에 귀화하여 완전히 일본인 (모모야마 겐이치桃山度一) 이 되었다. 조선 왕족이 일본에 귀화한 것과 비교하면,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이버지의 나라로 와  봉사한 우장춘의 행동은 평가받을 만하다. -333-

 

- 2010년은, 한일병합이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아 왜 우리는 근대화에 실패했는가?

앞으로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애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짚어보아야 할 때다. -390-

 

-.............-394-끝.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