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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껴쓰기) 세상에 예쁜 것 -박완서] 중에서.........

최해식 2015. 11. 1. 13:15

[의연한 나목을 볼 때마다.] -236-

(베껴쓰기)

 

 

[의연한 나목을 볼 때마다]

숲이 무성한 동산을 우리 마당처럼 지척에서 바라볼 수 잇는 교외에 사는 걸 늘 행복하게 생각했는데 계절이 만추를 지나 초겨울로 접어드니 그렇지도 않다. 바로 엊그제께까지도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물든 은행나무가 우중충한 밤나무숲에서 유난히 돋보이더니,하룻밤 비바람에 나무의 마지막 영광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다른 나무들과 다름없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내 마당도 마찬가지다. 이른 봄부터 시작해서  꽃 피고 열매 맺던 나무들은 마지막 잎새조차 안 남기고 가장귀만 남았다. 올해 처음 열배가 열린 감나무만 좀 다르다. 어린 나무답지 않게 백 개도 넘는 열매를 맺은 게 하도 신통해서 다 따지 않고 여남은 개 까치밥으로 남겨놓았더니 그게 나무에서 얼었는지 우중충한 갈색으로 변한 게  깨끗한 나목보다 훨씬 애처롭다.

숲이 가까우니 바람 소리도 가깝다. 초저녁잠이 많아 새벽에 일찍 깰 수밖에 없는 나는 남 다 자는 시간에 호젓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날 하루 할 일의 계획도 세우는 게 습관화돼 있다. 그러나 우수수......바람과 가을 나무가 함께 만들어낸는 소리에 잠이 깨면 실내 온도가 낮지도 않은데 이불깃을 어깨까지 올리고 이 생각 저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반복해 생각하는 것은 주로 어린 시절이고 그립고 생각나는 사람들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내가 좋아허는 사람은 이 세상보다 저세상에 더 많구나,그런 생각이 나를 한없이 쓸쓸하가ㅔ 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나의 성품 중 가장 기특하고 고마운 건,욕먹고 미움 받은 건 쉬이 잊어버리고 사랑받은 건 오래 기억하느 게 아닐가. 그런 능력이 나르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를 그렇게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고맙고 그립다.

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제는 떨굴 잎사귀조차 안 남은 채 의연한 裸木을 볼 때마다 특히 그립고 생각난다. -236~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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