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20읽음.
- [석양을 등에지고 그림자를 밟다 -박완서 ]
이태리 의사에게 이 증상을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내가 영어로 지껄일 수 있는 병명이 고작 위통,두통,열이 있다.정도인데 무슨 소용인가. 나는 오슬오슬 춥다가 오싹오싹 떨린다고 말하고 싶다. 내 몸은 지금 불화로를 얼음조각으로 포장해놓은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삭신이 쑤신다고 말하고 싶다. 입맛이 소태 같다고 말하고 싶다. 죽어도 이 나라에서 선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도 통역할 수 없을 것 같은 말만 생각낫다. 그걸 참고 따라다니자니 하루가 여삼추였다. -41-
-........집에 가서 이것저것 먹을 걸 상상하고,식구들에게 투정 부릴 궁리를 했다.
콩나물죽이 먹고 싶다고 할까,호박죽이 먹고 싶다고 할까,아니 휜죽이 먹고 싶다고 해야지.장조림 간장은 싫고,장산적,아니지 강된장에 맵지 않은 풋고추를 꼭꼭 찍어 먹고 싶다고 해야지. 상상만으로도 입 안에 군침이 돌고 살맛이 났다. 감기는 어지간히 물러간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그동안 얼마나 독한 감기를 앓았는지는 꼭 티를 내야지.-45-
-[감나무가 있는 풍경- 이동하]
여름철에는 풋감을 주웠다. 아침 일찍 감나무 아래로 나가 보면 제법 씨알이 굵은 풋감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꽃이 많이 붙는 해에는 그런 게 더 많았다. 꼭지가 무른 놈부터 저절로 솎아지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나무는 제가 감당할 만큼만 열매를 남긴다는 게 어른들의 설명이었다. -54-
- [단절을 잇다 -양귀자 ]
지금의 어머니는 예전의 내 어머니가 아니다. 고통과 회한으로 가득 찼던 당신의 과거에서 빠져나온 것은 보기에 나쁘지 않으나 지난 세월의 무게에서 벗어나 가벼워진 어머니를 보는 일은 언제나 슬프다.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154-
- 삶의 비밀은 글자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물 몇 살의 나는 몰랐다. 하지만 그 세월만큼 더 살고 나니 조금 알 것도 같다. 글자와 글자 사이의 아주 짧은 침묵,언뜻 지나가는 감정의 물결 한줄기, 그런 것들 속에 진실이 담겨진다. 이것이 문학의 혹은 예술 전반의 숙명이다.-158-
- 불현듯 찰리 채플린의 이 말이 생각난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다 희극이다....." -162-
- 밤새 마음이 출렁였던 까닭은 그 길이 한 번 선택하면 두 번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막무가내로 우리의 등을 밀어대고, 수많은 시행착오가 이어져도 되돌아가 수정할 길은 없다. 방법은 하나다.무작정 걸으면서,때론 무릎을 굽혀 벌레처럼 기어서라도 일단 전진하며 앞날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빠는 기어이 살아남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굴욕과 배신과 분노로 점철된 시간을 견디는 것이 곧 '예술적' 인간의 길임을 알았을 것이다. 천재의 자리도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오빠가 알았어야 했다. 운명에 투신하는 것이 아닌. -163-
- [페스트에 걸린 남자 - 최수철]
먹을 것을 쫓는 게 어찌 자발적 의지의 소산이라고만 할 수 잇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 쫓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쫓는 행위 그 자체가 이미 운명이었다. 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그에게는 [페스트]를 쓰는 일 그 자체가 이미 운명이었다. -169-
- 한 알의 씨앗이 싹이 트고 잎과 줄기가 자라고 열매를 맺어 한 그루의 나무로 성장할 때까지 그로서는 물을 주거나 벌레를 잡아주며 가꾸고 보살피는 게 최선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마음이 편해지면서 동시어ㅔ 비장감이 찾아들었다. 이제 죽음과 겨루는 질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엇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멈추거나 머뭇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90
-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것처럼 꿈은 억압된 욕망의 변형된 표출일 수 있다. 또한 꿈이란 자신의 내면에서 보내오는 메시지인데, 그 난해한 상형문자를 해독하면 진정한 자아와 화합할 수 있다는 융의 입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꿈이 신경계의 스트레스와 관련된 뇌의 화학적 작용의 결과일 뿐이라는 현대 꿈 연구가들의 견해 역시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무렵 그가 꾸었던 꿈은 그 모든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그는 마치 자기 속에서 분출한 마그마를 그대로 뒤집어쓴 기분이 들곤 했다. -196-
- 그의 주된 일과는 걷는 것이었다. 산길을 올라가서 보적사라는 절과 세마대라는 정자를 지나 독산성 성벽을 따라 걷는 일이 날마다 반복되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면서 그는 조금씩 정상적인 리듬을 되찾을 수 잇었다. 술을 마시는 데에도 어느 정도 절재를 할 수 잇게 되엇다. -198-
-[어느 날,낮선 곳 -박성원]
그날은 무척이나 더웠다. 흘러내리는 촛농처럼 몸이 축축 처지던 날씨였다. 하루에 기차가 한두 번 정도 정차하는 간이역 부근이엇다. 철로는 끓고 잇는 용광로 같았고,역사 안은 한증막처럼 더웠다. 땀방울처럼 굵은 아지랑이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역사를 중심으로 단층자리 건물들잉 드문드문 서 있었고,포장된 도로가 일이 킬로미터쯤 이어져 있다가 나머진 흙길로 뒤덮여 있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카페에선 조용하게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e River] 란 노래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The River] 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엿다. 신기한 마음에 나는 곧바로 카페로 올라갔다. 카페는 이 층이었다. 계단에선 건초 냄새가 풍겼다. 문을 여고 들어갔을 때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242-
- 여자는 턴테이블로 가더니 리 오스카의 음반을 올려놓았다. 잠시 트랙을 긁는 잡음이 일더니 곧이어 금방이라도 아침 해가 떠오를 것만 같은 하모니카 소리와 함께 [My Road] 가 흘러나왔다.
.........나는 휘파람으로 따라 불렀고,여자는 작은 소리의 허밍으로 흥얼거렸다. 나의길.나의길.나의 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모니카 소리와 함께 수없이 많은 길들이 보였다. 내가 걸어왔던 길.여행을 다니면서 수없이 걸었고,지나쳤고,보았던 그 길들.비에 젖은 길.흙먼지가 피어오르던 길. 새벽이슬이 눈물처럼 내려앉아 있던 길. 버스가 지나간 뒤 움푹 패여 있던 길.술에 취해 내가 주저앉아 있던 길. 도시의 내온사인을 받아 멍든 것처럼 보이던 길.누나의 손을 잡고 학교로 걸어가던 길.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던 골목길.자전거를 타던 길. 흰 눈에 뒤덮인 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던 길.어머니와 시장 보러 가던 길. 친구들이 시위를 하던 길. 내 발길이 닿았던 그 모든 길들. -246-
- 하루에 한 번씩은 꼭 [My Road] 를 듣는다고 했다.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러나 답은 언제나 없다고 했다. 장사는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도시나 큰 마을로 떠나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248-
-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고,나는 음악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었다. 방 안에 있던 사물들잉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희미해져가는 어둠 속에서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사물들의 색깔들이 검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더니 이내 제 색을 띠기 시작했다 방 안은 사물들의 제 색 찾기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조용했고,어디선가 달그락거리며 새벽밥을 준비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전조등을 켠 버스가 지나갔고,거리르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 보였다. 새벽의 거리는 슬퍼 보였다.-252-
-[봉천동의 유령 - 조경란]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은 눈에 띄게 생장점이 줄어들어가는 식물 같아 보였다. 밤이 깊도록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어디에 있든 스타일은 중요했다. ..................떠났다 돌아올 때마다 집은 낯설고 불편해졌다. 부모가 늙어가는 속도만큼이나 집도 빠르게 낡아가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방문들은 경첩이 틀어져 잇엇다. -258-
-그 소리들은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창문여는소리, 식탁의자끄집어내는소리,뒤꿈치에힘주고걷는발소리,
식탁유리에수저부딪히는소리, 잔부딪치는소리, 전화벨소리,
텔레베전소리, 수돗물트는소리, 수군거리는소리, 웃음소리.
의성어로 표현하자면 이렇다.쿠쿠쿵,타탁탁,콰콰쾅,티티틱,디디딕,
트트특. -271-
-............-286-끝.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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