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77/ 관우의 의리론 - 나채훈 지음

최해식 2019. 2. 2. 17:33

- 중국에서의 관우 숭배사상;

마카오의 조직폭력배들이 매일 아침 '서로 배신하지 말자' 고 다짐하며 관우상 앞에 모여 절하고,  말레이시아 법정에서 판사나 검사들이 관우상 앞에서 '公正을 서약한 후에 재판을 시작한다' 고 하면  홍콩의 경찰서에서는 수사관들이 관우에게 '사건의 조기 해결을 비는 기도를 올린 후'에 출동하는 것처럼 다양한 행태로 이뤄지고 있다. -15-


- 관우는 무장이면서도 평소  공자의 [춘추]를 애독하였다.-25-


- 인상이 나쁜 월왕 구천을 피해 은거한 범려, 또  義를 위해 목숨을 바친'자로'를 잃은 공자의 아픔에대한 이야기는 관우가 세상에 태어나기 5백 년 이전에 벌어진 일이지만 오랫동안 세상에 퍼진 일화이자 인간관계를 이야기할 때 인용되는 사례이다. -26-


- 市道之交,즉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시장 상인들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작은 이익이 있어도 이리 모이고 작은 손해만 있어도 저리 헤어지는 사귐을 하고 있다. 권력의 세계,재물의 세계,명예의 세계일수록 이런 교제는 더욱 심해진다. -30-


-  춘추전국시대,진의 통일시대,초한쟁패시대,전한.후한의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소용돌이가 소용돌이를 삼키고 그것이 더큰 소용돌이 속에삼켜졌다.  -42-


- [삼국지]라고 하면 西晉의 진수가 펴낸 역사서를 말한다. 대단히 간결한 서술로 주석이 없으면 전후 사정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이나 명저로 대접해 줄만한 正史다. -52-


- 도원결의 당시 나이는 관우가 29세,유비가 28세,장비가 24세라는 것이 정설이다. -76-


- 義父라고 하면 친아버지와도 그리 차이나지 않는 어버이로 인식되던 그 시대에 눈 하나 깜짝 않고 주저없이 살해하는 배신의 심벌 여포도 그랬지만, 반동탁연합군의 맹주가 된 원소가 기주성을 차지하기 위해 어제의 동료였던 한복과 공손찬을 속이는 것도 그랬고, 자신은 잠자리에 들면 곁에 접근하는 인물을 칼로 벤다면서 시중드는 측근을 죽인 조조의 경우를 볼지라도 '잠자리를 같이할 정도' 라면 보통 신뢰하고 아끼는 정도가 아니다. 그러나 유비와 관우,장비는 '곁에 하루 종일 서 있고 잠잘 때도 함께 했다'는 이야기는 승복과 친밀의 극치를 보여준다. -79-


- 유비는 온화한 사람이고 겸손했으나 좀 뻔뻔했다.  야망은 있지만 여러모로 무능했다. 대인관계에서 동정심을 유발하는데 급급한 모습이  참으로 많았다. -80-


-  조조가 말했다.  "영웅이라 하면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뱃속에 뛰어난 계책을 숨기고 우주를  포용하는 기틀과  천지를 삼키며 토하는 의지가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히 따르게  하는 인물이어야만 하오" 라고 단정지었다. -115-


- 청조 말의 기인 이종오는 [후흑학]에서 '의리와 지조가 없는 기회주의의 달인 유비가 흑심을 가진 조조의 영웅론을 빙자한 진심 떠보기에서 보기좋게 성공한 것'  이라 했다.  -119-


- 허도에서 포로 신세의 관우가 보여준 행동,즉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킨다.  어떤 유혹이 들어와도 어떤 손해를 입을지라도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는 굳센 모습은 信義의 상징으로 관우를 평가하는데 결정적인 부분으로 꼽히고 있다 -135-


- 제갈량 같은 모사들은 약속이라는 것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지켜야 할 도리가 아니라 승리를  위해 그때 그때 전략상 또는 전술상 필요하면 얼다든지 남발하는 전술적 꾀에 불과했다. 그 당시 조조나 유비,손권 진영 모사들의 생각 대부분이 그랬다.  어찌 보면 당시 책사들의 약속이란 오늘날 정치인의 립서비스 같은 것이었다. -204-


- 제갈량은 "우리 주군이 잠시 동안 형주를 빌리는 것이네.  파촉을 얻으면 돌려주겠네" 하고 약속하자 노숙은 그 말을 믿고 문서로 써서 달라고 했다.  그러자 제갈량은 '올 겨울에 빌리고 내년 겨울에 돌려줌' 이라고 쓴 문서를 내밀었다.  ...........이 문서를 본 주유는 "이것은 속임수요. 언제라도 올해가 되고 내년이 되는 게 아니겠소. 돌려 주지 않겠다는 의미요." -210-


- 사실 형주는 파촉의 유비 정권에서 보면 먹을 것은 없고(=빌린 영토이므로 돌려줘야 했기에) 버리기는 아까운 (=그러나 돌려주기는 싫은) 닭의 갈비, 즉 '계륵' 처럼 되어 있었다. -217-


- 관우는 손군 진영에서 맹장으로 불리는 여몽을 중시했다.  원래 그는 용감하고 학문을 배워 刮目相對괄목상대(=선비는 사흘을 보지 않고 만나면 그동안에 얼마든지 높은  식견을 가질 수 있으니 눈을 씻고 다시 봐야 한다) 할 智將지장이었다. -240-


- 관우가 정색하고 대답했다. "옥은 깨져도 빛을 변하지 않으며 대나무는 불에 타도 곧은 절개를 굽히지 않나니 몸은 비록 죽지만 이름은 竹帛죽백(역사)에 남을 것이다. -249-


- [순자]가 말했다.

'군주는 배와 같고 민중은 물과 같다' 고 지적하면서ㅅ 만약 통치계급이 민중에게 필요한 ㅅㅇ생존조건을 획득하게 해준다면 물(민중)이 배(군주)를 전복시키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겠지만, 그렇지 않으ㅇ면 물이 파도를 쳐서 배를 전복시키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60-


- 원래 위선적인 유비는 가타부타 단호한 행동을 보인 경우가 없다.  결정이 필요한 경우는 상의하듯이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유비의 장기였다. -271-


- 관우가 차분히 대답했다.

"옛 말에도 있지 않소. "옥은 부술 수는 있어도 그 휜색을 바꿀 수 없고玉可碎 이불가개기백 , 대나무는 태울 수 있어도 그 마디를 훼손할 수 없다.竹可焚 이불가단기절" 고 말이오. -275-


- 남에게 허리를 자주 굽히는 것은 세상이 어지러운  때일수록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다. -285-


- 국가에 대한 의식의 각성 못지않게 민족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 시대정신으로 자리를 잡아갈 때 큰 역할을 한 소설이 [임진록]이다-311-


-.............-318-끝. 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