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76/해유록 - 신유한 지음,김찬순 옮김

최해식 2019. 1. 27. 17:43

-보배는 내 곁에 있다.

진시황의 아버지 자초를 왕위에 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활을 한 사람이 여불위다.   당시 여불위가 자초를 보면서 한 말이 ' 奇貨可居기화가거 '  이다.   기이한 물건은 미리 차지해두는 것이 좋다 는 뜻이다.



-숙종45년(1719년)4/11~5/17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5/18~6/1  부산 앞 절영도에서

                            6/6            바다의 신에게 제사하였다.

                            6/15~6/19  대마도에서 왜인이 왔다.

                            6/20           드디어 배가 바다로

                            6/21~6/23  좌수포에서 집에 편지를 부쳤다.

                            6/24~25      서박포에 내려 서복사에 들었다.

                             6/27           대마도에 닿았다.


곤륜학사 최창대를 찾아가서 격려문을 청하니, 서가 위에 얹어둔 [백석시초] 한 권을 내게 보이면서 말했다. ......... 그대는 '작은 산에 松柏이 없다' 생각하여 소흘히 하지 말게. 라고 격려하였다. -16-


- 성여필은 제목과 운자를 내기만 하면 어느덧 시가 나와 수십 운을 연달아 지으니 빠르기가 북태 따라 소리나는 북이라 할까.-26-


- 서박포는 부악산 아래 있는데 산이 높고도 수려하며 동쪽,서쪽,북쪽 세 면에 산줄기가 달려 돌아와 그 안에 들어온 바닷물이 둥글기가 거울 같았다. 넓기가 좌수포의 세 배나 되는 시원스러운 호수다. -45-


- 관사의 이름은 西山寺이다. 이 나라 풍속에는 이름 써 놓은 현판이 없고 공관을 통칭 절寺.이라고 한다. 여기는 관부의 서쪽에  있으며 산에 지었기 때문에 서산사라 한다는 것이다. -58-


- 8월26일 맑음.

상관,곧 조관에서 동쪽으로 돌아 두산 사이를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밤이 되어서는 폭우가 또 탄환을 퍼붓듯 하니 배들이 미처 뜸을 덮지 못하여 일시에  떠들며 덤비는 것이었다. 왜의말이 여기서 겸예(시모카마가리)에 있는 숙소까지 20리도 못 된다고 하ㅐ했다. 겸예는 浦崎포기라고도 하는데 안예주에 속한다.  집들이 솔숲과 참대숲 사이로  빽빽이 늘어서 거울 같은 바다에 비치니 맑고 고운 풍경이 바다의 명승이다.  -125-


- 해유록 추가분;   http://blog.daum.net/chscoral/2247


-다음에는 200페이지 부터 읽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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