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69/ 이순신과 임진왜란3 - 이순신 역사연구회 지음

최해식 2018. 12. 30. 17:51

- 저 것으로 좋은 본보기를 삼는다면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얻게 되는 것' 이니,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314-


-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 風神秀吉은 성 쌓는 일을 맡아 아주 빨리 성공적으로 일을 마쳤기 때문에 윗사람의 눈에 띄어 출세를 하게 디었다.  건설업이란 종합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성 쌓는 일을 성공적을 수행한 사람이면 다른 일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발탁되었던 것입니다." 라고 했다.  20세기 건설 達人에 의한 16세기 건설 달인에 대한 평가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324-


- 1593년 8월10일 [진왜정장] 의 기록에 의하면, 왜군들은 왜성을 쌓는 데 여념이 없었으며, 일하는 사람의 3분의 1은 조선인 부역자였다, 는 기록이다. -339-


- [난중일기]는 충무공이 경영자(CEO)로서 기록해 둔 일기이다. 여기에는 원균의 언행, 순찰사의 공문에  관인이 찍히지 않은 것, 장병들과 적군의 동태, 날씨 등 크고 작은 사안들이 낱낱이 기록되어있어 이순신의  꼼꼼한 군영 經營의 면모를 실감하게 해준다. -361-


- 중국은 南船北馬의 전통이었고,  명은 양자강 유역의 해군력으로 중국을 통일했기에 해군을 중시했으며 해군에 대한 이해도 높았다. -364-


- 감동포구(구포)는 김해와 함께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낙동강 하류지역의 물류 중심지였고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큰 왜성을 쌓고 낙동강의    최대 병참기지로 삼았던 곳이다. -368-

(구포왜성) ; http://blog.daum.net/chscoral/2175


- 東道西器 ;

추석때 성묘 가는 마음은 東道(동양 사상)이고, 타고 가는 자동차는 西器라는 시각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90년대 와서 세계화 시대를 맞아 '우리 것을 지키고 왜래의 것을 수용하자' 는 것이 바로 東道西器의 이론이다.  -408-


- 나고야 城 ;

나고야성은 규모로는 오사카 다음으로 일본 제 2의 거성이다.

이 거대한 城群이 불과 5개월 사이에 완성되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이 거대한 급조 군사도시의 座陣좌진 병력은 10만2천여 명. 이었다.  이 군사도시는 난리가 끝난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엉 역사의 갈피 속으로 묻혀버렸다. .......역사의 현장을 소중히 보존하자는 움직임은 진제이 町은 나고야  성터터를 사들여 옛 모습을  되살릴 계획을 수립.사업에 착수했다. -418-


-........-451-끝. 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