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66/여해 이순신 - 김종대 지음

최해식 2018. 12. 30. 17:47

- [무경] 강독시험을 볼 때, 이순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는 법. 이기도 하거니와, 또한 강목에는 임자 6년에 장량이 卒졸했다고 했으니, 어찌 신선을  따라가 죽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30-


- 자신을 포함한 가족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이웃을 위하고 부하를 돌볼 수 있다.  그리고 이웃가 부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만백성을 굽어살필 수 있는 것이다. -52-


- 좌수영은 여수에 있었다. 여수에 좌수영이 설치된 것은 이순신이 부임하기 100여 년 전으로, 그만큼 우리 해군의 전통이 서린 곳이다. -61-


- 임진란은 그냥 보아 넘길 전쟁이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 그 성격이 근대전이고, 둘째 동아시아 3국의 병력 동원 규모가 수백만에 달한  엄청난 규모의 전쟁이며, 셋째 7년에 결쳐 진행된 장기전이고, 넷째 생명과 재산의 손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막대했으며, 다섯째   동아시아 전체의 정치와 문화에 심각하고도 광범위하게 미쳤기 때문이다. -73-


- 전쟁 전년 여름에 '소오요시도시' 나 '겐소' 같은 사신들은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정보를 미리 알려주었다. 이를 입증하듯 부산 왜관에 상시 머물던 상인들도 모두 일본으로 돌아가서 왜관이 텅 비어 있었다. -78-


- 제1진 18,700명의 군사가 고니시의 지휘 하에 전선 700여 척을 나눠 타고 오전 8시 대마도의 대포 항구를 출발, 오후 5시경 부산포에 도착했다.  4월19일에는 가토가 부산으로, 구로다는 낙동강 하구로 상륙했다........왜군을 맞아 가장 먼저 접전을 벌였어야 할 수군은 경상좌수군이다. 그러난 경상좌수사 朴泓박홍은 전쟁이 나자 바로 본영=부산 수영구, 을 버리고 자신이 지휘하던 대소 군선 103척을 바다에 가라앉힌 뒤 도망쳤다.   -80-


- 4월13일 부산포에 도착한 왜적이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했다는 것은 아마 재래식 전쟁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록일 것이다. 450킬로미터가량 되는 거리를 보병이 20일 만에 이동한다는 것은 중간에 크게 지체한 시간이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진첨사 정발과 동래부사 송상현이 한나절,  신립이 한나절  길을 막은 것 외에는 모든 지방 수령들이 도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6-


- 이순신은 일이 있기 전에 반드시 철저히 준비해 실패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준비를 철저히 하려면  우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예측한 다음에는그에 맞추어 준비를 해야 한다.-91-


- "일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고,  시기에는 완급이 있습니다"  [계사년 4월10일] -143-


- 천지에 祈禱기도하니 천지가 감응하더라는것이다

기도란 목표가 뚜렷한사람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음을 모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말한다.  ........중용에 '無誠無物' 이란 말이있듯이 誠이 없으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제일의 열쇠는 정성이다.  정성이란 목표한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포기하지 않고 쉼 없이 오직 그 일에만 거짓 없는 일심으로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물을 끓이자면 100도가 되도록, 얼리자면 0도가 되도록 쉬지 않고 가열하거나 냉각시켜야 목표를 이룬다. -179-


- 깊은 산 香草향초가 제 스스로 꽃답고 한밤중에 뜬 달도 제 홀로 밝거늘,....... -207-


- .............-273-끝.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