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한국인의 일본 여행객수는 700만 명을 넘었다.
여행에서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다. 관련 지식을 미리 알고 여행한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0-
-두모포 왜관 ;
부산의 두모포에 약 1만 평의 왜관이 설치되었다. 조선 측의 受容港수용항이다. 왜관은 일본인 거류구역인 '일본인 마을' (=저팬타운.)로서 숙박,무역을 하는 곳이다. 무역량이 증대하자, 1678년 草梁項초량항의 약 10만 평의 부지에 新왜관을 짓고 이전한다. -81-
출전; 두모포왜관
조선전기에는 제포(진해 웅천) 부산포(부산 범일동0) 염포(울산 염포동) 등 세곳에 왜관이 있었고 일본인과 조선인은 허가를 얻어 왜관에 출입할 수 있있어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이전의 왜관은 폐쇄되고 일본 사절이 서울로 올라가 조선국왕을 알현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후 일본과 국교가 재개되면서 조선은 1607년 부산에만 왜관을 두어 외교와 무역을 허락하였는데 이때 세워진 것이 두모포왜관이다.
두모포왜관의 동쪽은 바다에 접해있고 서,남,북쪽 경계에는 담을 쌓았으며 왜관 동문 밖에는 佐川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두모포왜관이있던 주변을 고관 또는 구관이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1678년 에 신축한 초량왜관을 新館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
-에도의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는 1703년 부터 3년간 이곳 초량왜관에 상주하면서 피나는 노력으로 조선어를 공부해 일본인 최초로 日朝회화집[교린수지]를 저술했고, 1729년 외교를 담당하는 '사이반'으로 2년간 왜관에서 근무했다. -83-
-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의 후쿠젠지 절의 대조루에서 바라다보는 조망이 일본에서 으뜸이라하여 1711년 제8차 통신사의 종사관 '이방언' 이 "日東第一形勝" 이라 써준 글을 그대로 액자에 넣어 객전에 걸었다. 지금도 현판은 객전에 걸려있다.-143-
- 통신사는 오키쓰의 세이켄지淸見寺.에도 많은 자취를 남겼다. 여기서는 통신사의 역사자료관을 방불케하듯 그림과 많은 현판 글씨를 볼 수 잇다. 세이켄지淸見寺는 서쪽의 도모노우라와 더불어 통신사 일행이 절경이라고 칭송했던 인기 장소다. -274-
- 부산 조선통신사 역사관 -352-
(출전) 조선통신사 역사관 http://blog.daum.net/chscoral/2221
http://blog.daum.net/chanellee/13760397
-........-365-끝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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