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54/ 조선의 프로젝트 매니저 - 김덕수.남재덕 지음

최해식 2018. 11. 28. 21:59

- PM ; Project Management. "프로젝트 관리" 이다. -11-


- 9가지 지식영역 ;범위,시간, 원가, 품질, 인적자원, 의사소통, 리스크, 조달, 통합의 9가지 지식을 숙지해야한다. -30-


-이순신도 임진왜란 발생 1년 전부터 과거 先祖선조들이 수행한 해전을 분석해보고,  조선 수군의 장점과 일본 수군의 단점을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75-


- 임진왜란 때 가장 많이 활용된 일본의 괘속선인 '세키부네' 는 조선의 판옥선과 비교하면 크기가 작고 높이가 낮았으며 지휘선인 '아다케' 는 판옥선 정도의 크기로서 2~3층 누각을 만들어서 지휘관이 지휘하엿으므로 전쟁시 조선 수군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되었다. -81-


- 이수신 함대의 4차 출전 (부산포 해전 ; 1592.8.24~9.2)

8.24 오후 4시경 여수 좌수영을 출발,남해 관음포 거쳐서,사천 모자랑포에 도착한 후 거기서 정박하였다. -162-


-부산포해전의 전과 ; 적선 100척 격침, 전사자 약 8,000명,

아군 피해; 녹도만호 정운 외5명 전사. -168-

출전; 위 책

화손대에서 바라 본 쥐섬.  섬 모양이 잘 생겼다.▼

참고;이순신 연구소 http://cafe.daum.net/gaetuel/TiJP/170?q=%ED%99%94%EC%A4%80%EA%B5%AC%EB%AF%B8 

- 일본은 反間計를 펼쳐 조선에서 신임을 받고  있던 승려 '요시라'를 경상 우병사 '김응서'에게 보내어 가토 기요마사가 부산으로 침입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이에 조정은 이순신에게 출동명령을 내렸으나 이에 응하지 않아 1597.2.26 한산섬에서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186-


- 칠천량해전(1597.7.16) ;

일본함대의 회피 전술에 말린 원균 함대는 가덕도, 거제도 영등포까지 후퇴하였다가 그곳에 매복하여 기다리던 일본 육군에게 공격을 당하여 400명이 살해되었다.  원균 함대는 다시 칠천량으로 후퇴하여 그곳에 도착한 일시는 7.15일 밤 10시 무렵이엇다. 이날 밤 원균은 모든 장수를 소집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을 강조하였다.   이때 경상우수사 '배설' 은 용기를  낼 때와 겁낼 때를  구분하는 것은 병법에서는 중요한 전략이라고 설득했지만 원균은 듣지 않았다.

7.16일 새벽 4시쯤 일본 수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으나, 피로와 기갈에 지친 조선 험대는 전투의 기본 원칙인 '경계' 마저 제대로 하지 않아 일본 함대의 기습을 당한 것이었다. 이는 "왜적이 우리 배에 접근하여 올라오자 우리 장수들은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몰하였다" 라는 선전관 김식의 보고로도 알 수 있었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이끄는 12척은 견내량을 거쳐  한산도로 미리 탈출하였고, 원균의  잔여 함대는 고성 추원포로 도주하였다가 원균은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190-


- 명랑해전 (1597.9.16) ;

9.15일 이순신은 장수들에게 이르기를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라고 말하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켜 천 사람을 두렵게 한다" 라고 했다. 이순신은 이와같이 "必死卽生, 必生卽死"의 훈시를 통해 필사의 각오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일본 수군은 133척,조선 수군은 13척이었다. 싸움의 무대는 명량해협으로 이곳은 20리 밖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여 "울돌목" 이라 불릴 정도로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아 항해하기 위험한 좁은 수로였다. -220-


- 노량해전(1598.11.19) ;

오전 4시경에 왜 수군의 대함대가 관음포 앞바다에 이르자 이순신함대는 일제히 공격하여 적선 200여 척 격침, 수천 명 사상시킴. 아군 피해는 이순신 등 10여 명 전사. 총200여명 사상됨. -252-


-..........-259-끝.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