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와다 이사오,[포탄을 뚫고서],1925년
가와다는 자신이 경험한 러일전쟁을 소재로 쓴 [포탄을 뚫고서] 라는 소설에서 이순신을 칭송하면서, 이순신의 혼령에 자신의 안전과 일본 해군의 승리를 빌고 있다.-26-
-메이지 시대 해군 장교가 발틱함대와의 결전에 나서면서 이순신의 혼령에 자신과 일본 연합함대의 승리를 기원한 것은 한국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일본인의 사생관과 무인들의 사고방식애서 비롯하고 있다. .......일본에선 '적이지만 장하다'는 말이 있다. 적이지만 걸출한 무장은 칭찬하고, 존경한다는 의미이다. 임진왜란 중 동래성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자 끗끗이 앉은 채로 칼을 맞은 동래부사 송상현을 당시 일본군이 성 밖에 장사지내주고 墓標를 세워 그자리를 알아보게 한 것도 그 같은 뜻에서다. -29-
- [양조평양록]을 쓴 제갈원성,[조선정벌기]를 쓴 호리 교안도 李舜臣의 정확한 이름을 모르고 있엇던 것이다. 삼도수군통제사 李舜臣.-46-
- 1892년 세키 고세이가 쓴 [조선 이순신전]이 처음 출간되었다.
세키의 경력은 1891년7월 당국의 지시에 따라 조선 삼남 연해 지방의 지리조사를 하러간 측량기사라는 사실이다. ............세키 고세이는 이 책에서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이 실패로 끝난 것은 '정말로 우리 수군이 너무나 무능했던 것이 그 중요한 패인' 이라고 결론짓고, 앞으로 일본이 세계열강과의 전투에 대비하려면 해군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 강조하고 있다.-57-
- 세키 고세이는 "류성룡이 이순신의 용약을 비천한 신분 가운데서 찾아내어 국가가 위난을 당햇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의혹을 물리치고 그를 발탁하여 중용한 선견지명을 마치 프랑스의 파올리 장군이 코르시카의섬 출신인 일개 사관 나폴레옹의 재능을 가려내어 천거하였다는 일화와 아주 흡사하다" 고 하였다. [조선 이순신]에서 -62-
- 당시 영국을 굳게 지켜 나폴레옹의 전화를 입지 않게 한 것은 영국의 이순신아라고 할 수 있는 넬슨의 전공이요. 또 조선을 지켜 국운의 세락을 면하게 한 것은 조선의 넬슨이라 할 수 잇는 이순신의 위대한 전력이었다 해야 할 것이다. [조선 이순신]에서 .......이순신과 넬슨을 비교, 언급한 것은 이 책이 효시로 이후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해군 명장에 관한 이야기가 후세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순신을 서양의 명장, 넬슨과 최초로 비교한 것이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 그것도 학자나 전문가도 아닌 측량기사라는 평범한 일본인이었음. 을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한국인의 저술에서 이순신과 넬슨을 비교하는 구절이 처음 나온 것은 [조선 이순전]이 발간된지 16년후 1908년5월2일 대한매일신보의 역사전기물로 연재된 신채호의 '수군 제일위인 이순신' 이다. 이처럼 이순신을 넬슨 등과 비교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늦어진 것은 서양 문물과 학문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본보다 수십 년 뒤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63-
- 중국은 청일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상실했고, 그로부터 10년 후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 장악을 놓고 벌인 러일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일본의 한국지배를 열강이 인정하는 셈이 되었다. 동양의 작은 섬나라, 일본이 동아시아의 맹주 중국과 러시아라는 대국을 잇달아 격파함으로써 고대 이래 유지돼 오던 '조공책봉' 체제, 즉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배구조가 붕괴되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104-
- 시바 료타로는 러일전쟁을 다룬 장편서설 [언덕 위의 구름]을 썼다......시바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과 조선을, 같은 동아시아 국가라는 운명공동체로 보고 있는데 이는 그의 논리적인 비약이자, 당시 동아시아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30-
- 수군 경력으로는수군만호가 전부인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한 류성룡의 사람을 보는 눈은 천리마를 식별했다는 伯樂백락의 눈에 비견할 만하다. -157-
- 조선은 부산 초량에 왜관을 설치해주어 쓰시마 사람들이 상주하며 조선과의 무역 외에 일본의 대 조선외교 창구역할도 해왔다. .......임진왜란 당시의 쓰시마 島主도주는 소 요시토시 宗義智였다. 요시토시는 그의 장인 고니시 유키나와와 함께 선발대로 부산포로 쳐들어왔다. -203-
▼ 조선후기 화가 卞璞변박이 그린 부산 초량의 왜관도
초량왜관의 면적은 약 10만 평에 달했고, 약 500명의 쓰시마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202-
-칠천량해전은 일본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사실상 유일하게 이긴 전투라고 알 수 있다. 줄곧 이순신에게 당해왔던 일본 측이 이순신을 통제사 자리에서 끌어내림으롰, 비로소 후임 통제사 를 전사시키는 등 그동안 조선 수군에 당했던 패배를 되갚는 대승을 거둔 것이다. -225-
-조선은 류성룡이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한다(懲毖)' 는 뜻에서 펴낸 [징비록]의 정신을 300여 년간 망각한 채 지내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략하는 치욕을 당했다. 반면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동양에서 가장 빨리 근대국가로 거듭나면서 부국강병의 기치아래, 육군,해군을 강화, 육성함으로써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했다고 할 수 있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조선어ㅔ 대한 지배권을 열강으로부터 승인받았다.-263-
-...........-265-끝.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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