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30읽음
-6.25전쟁은 이념을 위해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싸움이엇다.
내 고향 개성은 시골집의 조부님을 중심으로 면면히 유지되어오던 大가족의 우애와 결속과 평화는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추억이 되엇다.
..........우리 집에서도 삼촌은 옥사,사촌은 영양실조로,오빠는 좌익 우익 양쪽 진영에서 곤욕을 치르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세상이 바뀔 때마다 빨갱이로 몰렸다가 반동으로 몰렸다가 하면서 나는 내 눈에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자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박해를 당하면서 그들 앞에서 벌레처럼 기지 않으면 안 되엇다. 그때 내 마음에 섬광처럼 번득이는 게 없었다면 아마도 그 시절을 제정신으로 버텨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번득이는 섬광은 언젠가는 저자들을 등장시켜 이 상황을 소설로 쓸 것 같은 예감이엇다. 예감만으로도 그 인간 이하의 수모를 견디는 데 힘과 위안이 되엇다. 훗날 소설로 쓰기 위해 낱낱이 기억하려 했고 몸은 기면서도 마음은 최소한의 자존심이나마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려고 했다. -20-
- 봄날이 짧듯이 아름다운 시절이란 단명하게 마련인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남자 20세는 전쟁이 내리는 얼마나 싱싱한 먹이였을까.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33-
-좋은 이야기는 상상력을 길러주고, 옳은 것을 알아보게 하고, 사람과 사물에 대한 사랑의 능력을 키워주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한다. -39-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말들 중에서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한마디를 찾아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딱 한마디를 찾아 헤매는 과정은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주로 예전에 감동받은 작품을 다시 읽기도 하고 새로 나온 시집을 읽기도 합니다.-57-
-포도주를 만들 때 뭐가 필요한지 아니?
포도,설탕,소주. 또? 항아리,단지. 그러면 선생님은 "포도주는 포도를 버린 것이 땅에 고여 시간이 지나 발효하여 술이 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포도주가 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니까 무엇에 감동을 해서 쓰고 싶은 것이 생기면, 속에서 삭혀서 그것이 발효가 되면 쓰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온다. 뭐가 될 것은 반드시 속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67-
-포대기 끝으로 나온 아기 발바닥의 열 발가락이 "세상에 예쁜 것" 탄성이 나올 만큼, 아니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수명을 다 하고 쓰러지려는 고목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볼 수 있다면 그 고목나무는 쓰러지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83-
-어릴 적 우리 할머니로부터 수시로 들은 "아이들한테 김빠진 음식을 먹이면 골이 빈다" 라는 잔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며느리들에겐 그게 엄청난 스트레스였겠지만 할머니는 그게 신앙 같은 거였다. -107-
-소박하지만 김이 안 빠진 음식을 먹고 자란 내가 이제 생각하니 무지 호사스러운 유년기를 보냈구나,절감하게 된다 -109-
-명절이면 며느리들이 가장 피곤해하는 게 자기 한 몸을 시집과 친정에 어떻게 적당히 배부할 것인가 때문이라고 한다. 며느리가 곧 딸이다. 앞으로 외자녀도 점차 많아지는 추세이니 명절이 두 개씩이나 되는 걸 적절히 이용해 제발 딸들 좀 덜 피곤하게 해졌으면 싶다.-145-
-내가 우리 마당에 있는 꽃 이름을 다 익히려고 하는 것은 식구 같다보니 이름을 모르면 토라질 것 같은 느낌까지 들 때가 있다.....꽃들도 내가 씨를 뿌렸건 꽃가계에서 사 왔건 간에 나한테 시중을 들게 하고 시중든 것만큼 갚아주는 살아있는 생명이니까, 이왕이면 섭섭하지 않게 대접해주고 싶은 게 이름을 외고 불러 주는 까닭이다. --
-사족 한마디: 봄을 제일 먼저 알려오는 보라색 봄까치꽃, 얼마나 반갑고 귀여운 이름인가. '봄까치 꽃, 일명 개불알 꽃' 이라고 해 놓은 걸 보고 속이 다 시원하였다.-171-
-개성 여자들은 '임질'을 잘해 팔러 갈 때도 광주리를 이고 갔지만 돌아올 때 빈 광주리도 들지 않고 이고 왔다. 옥자지걸 유쾌하게 떠드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렸다. -171-
-당신이 지금까지 보아온 성화聖畵 조형물 중에 으뜸으로 아름다운 것은 철원 도피안寺의 철불이었노라고 하신 신부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때의 기분은 그랬다. 왜 있잖은가, 온갖 기름진 산해진미를 배불리 먹고 나서 그 포만감을 이기지 못해 한다는 소리가 뭐니뭐니 해도 맛 중의 으뜸은 어릴 적 우리 엄마가 우거지 넣고 끓여주던 된장찌게 맛이라고 말할 때 아무도 이의를 제기힐 수 없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고 할가. 말씀하시는 신부님의 태도는 그 이상의 진정성이 있었던 것 같다. .......심미안처럼 독창적이고 편협한 것은 없기 대문에 함부로 추종할 일은 아니지만 문득문득 그 말씀이 떠오르곤 했다. 더군다나 카톨릭 신부님이 어떻게 불상를 그렇게 까지 극찬할 수 있을까. 속으로 한번 꼭 가봐야지 벼르고 있었다. -196-
-깊은 산속 옹달샘은 자기만 더렵혀지지 않으면 그만이란 이기적 존재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깊은 산속에 옹달샘이 없다면 산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어떻게 목을 축이고 길을 찾아 살아 돌아올 수 있겠는가. 작은 옹달샘도 차면 어차피 흐르게 돼 있다. 낮은 곳으로 흘러흘러 마침내 큰 강에 이르런다....그렇게 오염시켜도 아직은 강이 아주 죽지않고 살아날 가망이 있는건 작지만 어디선가 졸졸 흘러드는 맑은 물이 아슬아슬하게 강의 임계점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207-
- [의연한 나목을 볼 때마다]
숲이 무성한 동산을 우리 마당처럼 지척에서 바라볼 수 잇는 교외에 사는 걸 늘 행복하게 생각했는데 계절이 만추를 지나 초겨울로 접어드니 그렇지도 않다. 바로 엊그제께까지도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물든 은행나무가 우중충한 밤나무숲에서 유난히 돋보이더니,하룻밤 비바람에 나무의 마지막 영광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다른 나무들과 다름없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내 마당도 마찬가지다. 이른 봄부터 시작해서 꽃 피고 열매 맺던 나무들은 마지막 잎새조차 안 남기고 가장귀만 남았다. 올해 처음 열배가 열린 감나무만 좀 다르다. 어린 나무답지 않게 백 개도 넘는 열매를 맺은 게 하도 신통해서 다 따지 않고 여남은 개 까치밥으로 남겨놓았더니 그게 나무에서 얼었는지 우중충한 갈색으로 변한 게 깨끗한 나목보다 훨씬 애처롭다.
숲이 가까우니 바람 소리도 가깝다. 초저녁잠이 많아 새벽에 일찍 깰 수밖에 없는 나는 남 다 자는 시간에 호젓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날 하루 할 일의 계획도 세우는 게 습관화돼 있다. 그러나 우수수......바람과 가을 나무가 함께 만들어낸는 소리에 잠이 깨면 실내 온도가 낮지도 않은데 이불깃을 어깨까지 올리고 이 생각 저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반복해 생각하는 것은 주로 어린 시절이고 그립고 생각나는 사람들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내가 좋아허는 사람은 이 세상보다 저세상에 더 많구나,그런 생각이 나를 한없이 쓸쓸하가ㅔ 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나의 성품 중 가장 기특하고 고마운 건,욕먹고 미움 받은 건 쉬이 잊어버리고 사랑받은 건 오래 기억하느 게 아닐가. 그런 능력이 나르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를 그렇게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고맙고 그립다.
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제는 떨굴 잎사귀조차 안 남은 채 의연한 裸木을 볼 때마다 특히 그립고 생각난다. -236~238-
-'뭐 이런 아줌마가 다 있어' 하는 아주 경멸하는 태도로 "아줌만, [토지]에 나오는 악양도 몰라요?" 이러는 거예요. 그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빛나 보일 수가 없더군요.악양간다는 소리를 으악으로 잘못 들은 거예요. 그 당시 그 사람이 [토지]를 읽었기 때문에 저를 그렇게 무시하는 눈초리로 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거기를 배경으로 [토지]라는 큰 소설이 나왔고, 그 무대가 되었다는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너는 [토지]도 모르냐는 말투와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였습니다.-227-
-벼슬길에 나아갈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학문을 놓지 않고 '주경야독'을 사람 사는 기본으로 여기는 집안이었다.-270-
-...........-279-끝. 잘 봤습ㄴ다.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348/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박완서 지음 (0) | 2015.10.28 |
---|---|
347 / 친절한 복희씨 - 박완서 지음 (0) | 2015.10.28 |
345/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0) | 2015.10.28 |
346/ ----- - 박완서 지음 (0) | 2015.10.20 |
345/ ---- - 박완서 지음 (0) | 2015.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