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좋은시 / 세월 - 김동리

최해식 2015. 10. 11. 19:23

세월 - 김동리

 

세월 가는 것이 아까워

아무 일도 못한다. 그것은

여행을 떠나기에도

사랑을 하기에도 아깝다

 

책을 읽거나

말을 건네기에도 아깝다

 

전화를 받고

손님을 맞고 하기에는

더욱 아깝다

 

아까워 세월을 아무것에도 쓸 수가

흘러가는 모든 순간을

앉아서 지켜볼밖에

앉아서 지치면 누워서라도,

 

누워서도 지치면

다시 일어나 술이라도 마실밖에

술은 마실수록 취하는 것

아무리 마셔도,

 

취해 있어도 나는 그

달아나는 세월의 어느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눈 지그시 감았어도

눈 딱 벌려 떴을 때처럼

달아는 모든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

그냥 그렇게 지켜볼 뿐이라

가는구나 가는구나

 

그렇다 그냥 지켜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