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이장 출신 이었든 한고조 유방은 세세한 것까지 법으로 만들었던 진나라의 통치 방식이 오히려 사회적 위기를 가져왔다느 반성에서 억지로 하지마라는 도가의 무위 정치를 채택했다. 한고조 유방이 혼란수습의 첫 단계로 천하를 다스릴 세 가지 법인 '법삼장法三章' 을 발표한 것도 자유 방임에 가까운 통치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반영한 책이 [여씨춘추] 와 [회남자] 다. -15-
- 하지만 자유방임의 결과는 왕권의 약화와 귀족들의 엄청난 토지 소유로 나타났다. 이에 한무제는 통일 국가를 이끌 수 있는 힘 있는 이념 근거가 필요하여 인재를 널리 구한다고 하여 '동중서(기원전 ?176~?104)는 [현량대책]을 올렸다. 동중서는 하북성 광천에서 태어나 장안에서 죽엇고 [춘추] 의 해설서인 [춘추공양전] 을 익혀 '경제' 때 '박사' 칭호를 받아 제자들을 가르쳤다.그러나 나중에 '무제' 때 자신의 학설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을 겪었다. -17~18-
-[춘추] 는 공자가 주나라 221년간의 역사를 자신으 관점으로 새롭게 정리한 역사서이다. 이 책에 대한 해설서로 유명한 것이 [좌전] [공양전] [곡량전] 이다. 한무제는 공양학에 대한 신뢰가 커서 무제가 다스리던 50년 동안 근본 통치 이념이 되었고 이것이 [춘추공양전] 박사였던 '동중서' 의 [현량대책] 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배경이다.
동중서가 [춘추] 에 기록된 천재지변만을 뽑아내 자신의 관점으로 쓴 [춘추번로] 에서 왕권신수설로 한나라와 무제의 통치를 합리화했다. 하지만 [춘추번로] 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임금이 잘못하면 하늘이 벌을 준다는 재이설 을 주장해 무제의 분노를 사 감옥에 갖히고 모함을 당하자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처럼 동중서의 사상은 통치 계급을 지지하는 주장과 절대 권력을 견제하는 주장을 함께 담고 있다. 하지만 왕권 강화를 위한 '왕권신수설' 이든 왕권 견제를 위한 '재이설' 이든 그의 주장 모두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신념 위에 서 있었다. -19-
- [오행] 의 상생과 상극 관계 ;
상극관계;
불을 끄는 것은 물이며, 물을 막는 것은 흙이다. 흙이 무너져 내리면 나무로 벽을 쌓아 막고, 나무는 도끼로 잘라 버릴 수 잇으며, 쇠붙이는 불로 녹일 수 있다. (水-> 火, 土-> 水, 木-> 土, 金-> 木, 火-> 金)
상생관계;
물을 먹고 나무가 자라고, 나무에서 불을 피워낸다. 불이 다 타면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고, 흙 속에서 쇳덩이를 캐내며, 쇠붙이의 날카로운 끝에 이슬방울이 생긴다.(水-> 木, 木-> 火, 火-> 土, 土-> 金, 金-> 水)
병의 원인은 음양 . 오행의 균형이 깨져서 그런 것이다.
간木, 심火, 비土, 폐金, 신水 이다.
예) 간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경우 , 첫째 방법은 나무, 즉 간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방법은 상극의 측면으로 보고 흙의 위세가 너무 강해서 나무 방책이 제 역할을 못한느 것이라고 보고 흙에 해당하는 비의 기능을 약화시켜도 둘 사이의 세력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 -36-
- [삼국지] 는 한나라 말에 일어난 황건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시작된 의병들로부터 시작된다.
후한 말 농민반란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과정에서 한나라의 몰락을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황건의 난' 이었다. (머리에 누런 수건을 둘렀기 때문에 '황건' 이라는 말이 붙여졌다.)
한나라는 기원전 202 ~ 기원후 220년까지이다. (422년 유지됨)
기원후 8년, 왕망이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新나라' 를 세웠다.
한나라 황실 후예인 '유수' 가 新을 무너뜨리고 다시 한나라를 건립하여 '후한' 의 '광무제' 라고 부른다.
'왕망' (기원후 8년) 이전의 한나라를 '전한' 이라 하고 이후의 한나라를 '후한' 이라 한다. -54-
- 삼국지의 배경이 된 위 ,촉 ,오나라 ;
통치계급의 무능과 부패로 극심한 혼란에 빠진 한나라 대신
위나라와 촉나라를 세웠고, 손권이 일으킨 오나라와 더불어 [삼국지] 의 배경이 된 시대를 열었다.
위나라 는 조조가 닦은 토대 위에 셋째 아들 조비가 220년에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이다.
유비가 촉나라를, 손권이 오나라를 세웠다 세 나라는 40여 년 동안 서로 견제하며 지내다가 마침내 253년에 위나라가 촉나라무너뜨렸고, 265년 위나라 신하했던 '사마씨' 가 위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진나라' 를 세웠고 (서진 시대 시작),
280년 에 진나라가 오나라를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루었다.
진나라도 316년 에 황제가 북방 이민족의 포로가 되면서 끝이났고 ,
황실의 다른 친족이 남쪽으로 내려가 317년 남경에 다시 진나라를 세워 (동진 시대 시작) 419년 까지 나라를 유지했다.
그래서 북에 있던 진은 '서진' 이라 부르고 남쪽의 새로운 진나라는
'동진' 이라 부른다. (동진= 317~419)
위진 시기 는 조조의 아들 조비가 위나라를 세운 220년부터 '서진' 이 망할 때까지 (316년 황제가 북방 이민족의 포로가 되면서 끝이났음.)
약 100년간을 가리킨다.
한편 '동진' (동진= 317~419) 이 망한 뒤 ,
남쪽에서는 송 - 제 - 양 - 진 네 나라가 그 뒤를 이었다.
589년에 '수나라' 가 다시 중국을 통일했다.
304년부터 439년 까지 시기를 '5호 16국 시대' 라고 부른다. 이것의 원인은 일찍이 조조는 세 나라가 힘을 겨루는 상항에서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북방의 이민족인 흉노, 저 ,강 ,갈 ,선비 , 다섯 이민족을 끌어드렸다 이들 다섯 이민족이 서로 써우면서 16나라를 세웠다가 무너지는 혼란을 계속하게 되었다.
439년 북위의 '태무제' 에 의해 끝이났자만 ,
534년 '북위'는 다시 '동위' 와 서위' 로 갈렸다.
그후 '동위'는 '북제' 에게 , '서위' 는 '북주' 에게 멸망당했다.
'북주'가 '북제' 를 멸망시킨 뒤 양견 이 '북주' 를 무너뜨리고 '수나라' 를 세웠다. ( 589년에 '수나라' 가 다시 중국을 통일했다.)
수나라가 다시 통일할 때까지 북쪽 '이민족 왕조' 와 남쪽 '중국인 왕조' 가 서로 대립하던 270여 년 동안을 남북조 시기라고 부른다.
위진남북조 시기 370년간( 위진 시기 100년, 남북조 시기 270년) 은 혼란의 연속이고 한나라 말기까지 친다면 400년 이상이 된다. -54~56-
- '돈오점수' 란?
돈오는 문득 께닫는 것이고, '점수'는 점진적으로 닦아 가는 것이다. 돈오는 '혜능'이 말했고, 점수는 '신수' 가 말했다. -87-
- 균전제 란 국가가 모든 땅을 소유하면서 그 땅을 밳백성들에게 골ㄹ 고루 나누어준 다음 이를 기반으로 백성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지배하는 형태이다. 이 같은 제도는 노에제 사회의 가장 발달된 형태라고 평가한다.
당나랄 말기 일어난 안녹산과 사사명의 반란 이후 사사로이 대토지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소수의 토지 소유자와 그 땅에서 일하는 수많은 전호의 관계로 바뀌어 갔고 바로 이러한 변화를 기반으로 생겨난 국가가 송나라였다.-114-
- 주돈이 ;
북송시대 호남성에서 태어났다. 북송 성리학의 선구자이다.
당시 시인인 황정견은 주돈이를 " 인품이 높고 마음결이 무엇에도 구애됨 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 마치 비 갠 뒤 불어오는 맑은 바람이나 구름 빗긴 밝은 달과 같다" 고 평했다. 지루한 장마 끝에 건듯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나 구름을 벗어나 하늘 가운데 우뚝 자리한 밝은 달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누구나 탁트인 시원함과 티 없이 맑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것의 한자 표현은 '光風霽月' (광풍제월) 이다.
주희가 주돈이를 성리학의 시조로 높인 까닭은 그가 쓴 [태극도설] 때문이다. [태극도설] 은 우주 만물의 본질이 무엇이며 만물은 어디로부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생겨났는지,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만물의 본질을 깨달아 성인이 될 수 잇는지를 그림으로 그린 뒤 그에 대힌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126-
- 불교에서는 '월인만천' 또는 '월인천강' 으로 비유한다.
'월인만천' 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은 하나이지만 그 달이 만 갈래의 냇물에 비치어 잇다 는 뜻이고,
'월인천강' 은 하나의 달이 천개의 강에 비춘다 는 뜻이다. 세조 때 한글 시험을 위해 만든 [월인천강지곡] 은 바로 불교의 이 같은 진리를 설명한 책이다. -175-
-중국의 5 .4 운동 은 1919년 5월4일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일으켰던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시위를 가리킨다. 이 운동은 중국 문화
전반에 대한 반성과 개혁으로 이어짐으로써 중국 현대사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후 1911년 손문이 중심이 된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졌지만 얼마 안 가 원세개와 군벌들이 새로운 지배층으로 올라서면서 혁명은 실패로 끝이 났다. -305-
- 현실을 보는 눈은 두 가지다. 하나는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관점 이며
다른 하나는 유물변증법적 관점 이다. 예를들어 그림이 있다고 하자 . 커다란 나무와 흔들린는 풀, 따사로운 햇볕과 양산을 들고 거니는 숙녀들, 그리고 멀리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 몇이 보인다.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목가적이다. 그리고 평화로워 보인다. 이런 반응은 관념적이며 형이상학적 인 반응이다.
하지만 땡볕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땀과 그 위에 서 있는 숙녀들의 우아함이 보인다면 이는 유물변증법적 관점 이다.
이처럼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고립적이며 사물의 정지된 모습만 보는 단편적 관점이지만,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찾아낼 수 잇는 세계관이다. -316-
- 중국인들은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문화에서 원인과 해답을 구하려 했다. 5 .4 신문화운동, 문화대혁명, 그리고 개혁 개방의 문제에서 시작된 문화열, 이 모두가 문화를 중심축으로 하고 잇다. 그 가운데 5 .4 신문하운동ㅇ이 무력을 앞세운 서구 자본주의 문화와 중국 봉건 문화의 충돌이었다면 문화열은 경제력을 앞세운 서구 자본주의 문화와 중국 사회주의 문화의 충돌이다.
1984년 부터 시작한 문화열은 뒤떨어진 중국 현실 속에서 새로운 중국 건설을 위해 전통과 사회주의 그리고 개혁 개방의 문제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다.
개혁 개방은 걷잡을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억눌렸던 것들이 제소리를 내면서 개성 존중의 풍조가 대힉가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에게 널리 나타났다. -326-
-.....-333- 끝.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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