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92.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 - 한일공동 역사교재 제작팀 지음

최해식 2014. 11. 14. 21:30

-일본을 방문 했을 때 김옥균은 '후쿠자와 유키치' 를 만났습니다. 일본에서  ' 근대화의 아버지' 로 평가받는 후쿠자와는 조선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김옥균의  정열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후쿠자와는 조선이 메이지유신 이전의 일본 모습과 닮았다고 여겨 조선 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후쿠자와는 조선의 개화를 지지하는 신문 논설을  썼습니다. 그러나 후쿠자와가 의도하는  조선의 개화는 일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김옥균은 제국주의적 침략을 실행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44-

 

-조선을 도운  '후세 다쓰지' :

'후세 다쓰지' 는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는데,1919년 2월 8일,도쿄의 YMCA강당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조선인 유학생들 가운데 9명의 재판에 대한 변호를 맡았습니다.

1923년에는 조선에 건너와 조선 최초의 근대적 인권운동인 '형평사' 운동 에도 참가했습니다. 간토대지진이 발생했을 땐느 일본의 조선인 학살에 대한 사죄와 책임을 통감한다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1924년에는 총리대신과 조선 총독을 살해하기 위해 폭탄을 던진 조선인 '김지섭' 의 변론을 맡았습니다.

1926년에는 덴노와 황족 암살 혐의로 체포된 조선인 '박열' 과  ' 가네코 후미코' 의 변호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활동으로 그는 조선인에게 존경받았으나 일본인에게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군국주의자들에게  생명의위협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줄곧 조선인의 인권과 독립운동을 옹호 하고 지원활동을 하여

 2004년 그의 공로를 인정한 한국 정부는 최초로 일본인을 독립유공자로 선정하여 건국훈장을 수여했습니다. -157~ 158-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작렬했습니다.

8월 9일에는 미국이 두 번째 원자폭탄을 '나가사키' 에 투하했습니다.결국 1945년 8월14일,일본은 포츠담선언을 수락했습니다. 그날 저녁 종전조칙이 발표되고 '히로히토' 일본 덴노가 낭독한 조칙이 레코드판에 녹음되었고,다음 날 15일 정오,라디오 방송으로 일본 국민에게 전해졌습니다. -180-

 

-전쟁범죄인에 대한 군사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 또는 도쿄재판) 에서 사형에 처해진 한반도 출신자는 23명으로,그 가운데 20명은 병사가 아닌 '군속' 으로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191-

(P4~ 223)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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