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의 주택에는 문지기가 따로 있어 밤낮으로 집을 지켰고, 집사와 하인들이 있어 집안의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의 경비실과 관리실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29-
-시스템 키친 이라 불리는 현대의 주방은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30-
-우리나라 전통 주거의 가장 큰 특징은 온돌일 것입니다. 아궁이에 뗀 불 위에 솥을 걸어 밥을 하고, 그 열기로 방구들을 데워 난방을 하는 온돌, 불 하나로 조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하는 온돌은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고유문화입니다. -39-
-온돌은 고려 시대부터 서서히 남쪽으로 내려와 조선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중기부터는 온돌의 폐단을 지적하는 글들이 많아졌습니다. 1661년 정승 이경석이 현종에게 올린 상소에는 "선조들은 집무하는 방들을 모두가 마루방으로 만들었고 온돌은 내간용으로밖에 쓰지 않았는데, 요즘은 모두 온돌로 바꾸니 그 구들을 덥히기 위한 땔감의 낭비가 심합니다" 라은 내용이 있습니다. 18세기 실학자 이익은 "마루방에 잘 때는 병이 없었는데 온돌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병이 생기고 있다" 고 비판했고, 19세기 초 실학자 이규경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경이나 귀족들의 큰 집에도 온돌이 불과 한두 칸 빢에 없어 노인이나 환자의 거처로 쓰였을 뿐, 여타 식구들은 마루방에서 잠을 잤다" 고 썼습니다. -41-
-조선 후기, 한양에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지방에서도 부농이 성장하면서 주택 수요가 급증한 적이 있었습니다. -50-
-집을 가리키는 한자인 館과 屋은 뜻이 조금 다름니다. 양옥이나 한옥에서의 屋이 가정집을 말한다면 館은 대사관 영사관처럼 공무를 집행하19는 관료가 거주하는 집을 말합니다. 洋館이란 무역 관련 업무를 맡아보는 외국 상인의 집이었습니다. -59-
- 메이지 정부는 文明開化라는 슬로건응 내세웠습니다. 文明開化란 문명과 근대적.서구적 문물에 대한 개방을 뜻하는 開化가 결합된 말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중국,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아시아에서 文明化란 곧 서구화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외국으로부터 신문물을 적극적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문화촌,문화인,문화생활,문화요리,문화주택 역시 이런 상황에서 탄생했습니다. -63-
-루시 모드 몽고메리(1874~1942)의소설 [빨간 머리 앤] 의 원제목도 [푸른 박공 집의 앤] 입니다. 이처럼 영미 주택에서 前面 박공은 일반적이다. -69- 출전 ; 소설에 등장하는 집 모델 https://www.tourismpei.com/green-gables-house
-우리는 태어난 집에서 결혼을 하고, 그 집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되면 자신이 태어났던 안방에 누워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런 것은 농경사회의산물입니다. -77-
-빨강,파랑,보라색 등이 한 꽃송이에 뒤섞인 툴립은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돌연변이 툴립입니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변종이었다는 사실은 현대에 와서 밝혀졌으며, 당시에는 신비로운 현상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100-
-전체 지출 중에서 식비 대신 주거비 지출을 따져보는 지수를 수바베지수 라고 한다. -104-
-현재 우리나라는 크고 비싼 집보다는 가족 수, 직장과의 거리등 실리적인 이유에 따랄 내게 맞는 집을 선호하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이들은 무조건적인 내 집 마련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직장이나 학교 근처에 있는 집.문화시설이 많은 동네에 위치한 집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과 유럽에는 독신인구와 고령인구가 늘어나며 도심지에 주택이 많이 들어서고 주택 임대가 활성화되기 시작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107-
-카페는 커피와 각종 음료, 간식을 파는 음식점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공간을 임대하고 있습니다.-149-
-불교의 사찰은 일출을 중시합니다. ........대웅전은 동쪽으로 향하게 짓고,그 안에 모신 본존불 역시 정동쪽을 향하게 만들어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받게 설계되어 있다. 사찰이라는 곳 자체가 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무대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166-
-금강문에 있는 금강역사는 마치 태권도라도 하는 듯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금각역사는 석굴암의 입구에 있는 조각상입니다. 금강문을 지나면 천왕문에 도착하는데 네 명의 사천왕이 세워져 있는 문입니다. -168-
출전 ; 석굴암 금강역사상 http://blog.naver.com/dcsuhk/90189687113
-帝王南面은 '왕은 남쪽을 보고 앉는다' 뜻이다. -176-
-左廟右社 는 '왕의 자리를 기준으로 온쪽에는 역대 앙들의 신위를 모신 종묘를 두고, 오른쪽에는 곡식가 토지의 신을 모신 사직단을 두었습니다. 前朝後市는 '왕의 앞쪽에는 정사를 논하는 조정을, 뒤쪽에는 물품을 교역하는 시장을 두었다. -178-
-北扉집은 북쪽으로 낸 사립문이라는 뜻으로 북비집이란 낙향을 하여 궁색하게 살망정 임금을 향한 충절을 잃지 않는 선비의 집을 부른는 말이다. -179-
-1850년 파리에 문을 연 '봉 마르셰' 백화점과 '쁘렝땅' 백화점은 세계 치초의 백화점입니다. -213-
-전 세계 고인돌의 약 40%가 한국에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는 고인돌이 많습니다. -225-
-귀족과 왕족의 서재를 보통 사람들에게 개방해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도서관,박물관 등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공공시설은 본래 근세의 왕실이 소유했던 것을 시민도 향유할 수 있게 한 데서 시작되었다.-235-
-공립교육기관인 향교가 있었음에도 서원이라는 사교육기관이 생겨났다는 것은 지방 문중의 세력이 비대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왕권강화를 꾀했던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페 운동을 벌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37-
-전세계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아테네의 신전,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의 나이는 이미 1천 살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신이 최우선 가치였던 고대의 신전과 중세의 성당이 아직도 남아 있고, 왕이 최우선 가치였던 근세의 궁전이 아직도 남아 있듯이 자본이 최우선 가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을 지배하는 기업의 사옥이 가장 오랫동안 남는다-242-
-.....-248-끝.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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