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83 / 해방일기3 - 김기협 지음

최해식 2019. 2. 24. 18:49

-조선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제국의 일부로 외부에서는 인식되고 있었다.  조선인의 항쟁이 연합국의 전쟁 수행에 큰 도움도 되지못했다.  선량한 일본인이 비록 군국주의의 피해자라 하더라도 연합국에게 적국민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도 적국의 일부였다.  -10-


-퇴출이 결정된 권력은 '레임 덕' 이 아니라 '데드 덕' 이다. 도발자에 대한 보복 능력은 공권력의 중요한 근거다. 일저지르고 도망가는 놈이 있을 때 몇 년이라도 수배하고 수색해서 혼내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공권력이 성립된다.  몇 주일 후 사라질 권력은 공권력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  그래서 8월15일 아침에 정무총감이  여운형에게 '질서유지 협력'을 부탁했던 것이다.  .......남에게 겁준다는 것은 자기가 겁먹었기 때문이다. 아직 총과 도장을 쥐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인들은 질서유지에 목숨이 걸려 있었다. -48-


-친일파 재산가들의 최고의 '애국' 행위가 비행기 헌납이엇다.  '광산왕' 최창학(1891~1959) 이 1941년에 군용기 6대 제작비 40만 원을 헌납하여 '애국'계의 전설적 존재가 되었는데,  박흥식은 자본금5천만 원으로 비행기 제작회사를 세워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 그는 1944년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를 세웠다-171-


-1946.3.22 ; 국민당을 김구에게 갖다 바친 안재홍  안재홍은 민족주의가 혼란을 극복하는 열쇠라 생각하고 강력한 민족주의 지도력의 출현을 바랐다. 그래서 임정 추대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임정의 지도력이 무너진 이제 한독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국민당을 갖다 바친 그는 천금을 주고 천리마의 뼈를 사는 심정이었을까?-260-


-안창남과 정반대의길을 걸은 신용욱(1901~61) ;

1925년에 비행기 면허를 취득한 신용욱은 1936년에 세운 愼항공사업사를 대한 항공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1941년 조선항공사업사로 개칭,1944년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로 만들었다. ......가장 두드러진 친일파의 한 사람인 신용욱이 해방 후 조선항공을 장악하게 된다. 주식의 76.5%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 기관들이 비운 자리를 17%의 주주를 가진 신용욱이 넘겨받은 것이다.-310-


-신용욱은 1948.10월 대한국민항공사(KNA)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1949.2월 반민특위에 체포, 조사를 받고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자유당 소속으로 1950~58까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4.19혁명 후 부정 축재 혐의로 수사르 받았다. 5.16군사정변 직후 행방불명되었다가  8월26일 여의도 비행장 부근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고,경영난을 비관한 자살로 추정되엇다. KNA는 이듬해  1962년 정부 출자에 의해 대한항공공사로 전환되었다가 1969년 한진그룹에매각되었다.  -316-


- 경무부장 조병옥이 38선 이난의 경찰부와 61개 경찰서를 순시하고 돌아와 4월6일 군정청 출입기자단에게 회견을 발표햇다. ...... 이승만은4월15일 서울을 떠나  5월9일까지 충청,경상,전라도의 21개소의 대중 집회에 참석했다. 6월3일~9일까지 5개소 집회를 더했다.  정병준은 이 '남선순행' 을 이승만이  "자신의 명성을 높이며, 반대 세력을 제압하는 한편 지지 기반을 확충하고 지원금을 확보"  한 매우 주요한 작업으로 해석했다. -380- 


-......-424-끝.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