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宋襄之仁 ; 초나라 군사가 대오를 갖출때 까지 기다렸다가 공격에 나섰다. 송나라가 대패하고 宋襄公도 허벅지에 큰 부상을 입고 3일 만에 죽었다. 이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불팰요한 인정이나 동정을 베풀다가 오히려 심한 타격을 받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71-
- [한비자] 오두篇에 나오는 '수주대토' 는 우연한 행운을 바라며 공연히 시간만 허비하거나 착각에 사로잡혀 안 될 일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원래는 옛날 법제를 고집하며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법제를 마련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것이다. -154-
- "상고시대에는 도덕, 중고시대에는 지혜로 다퉜다. 그러나 지금은 기세와 힘을 다툰다. 옛날과 지금은 풍속이 다르고 새 시대와 옛 시대는 정책이 다르다. -160-
*** 2500년 전에도 옛날이 있었다고 하니 새롭다.
- 청조 말기에 활약한 巨商 '호설암'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일하게 지내는 사람에게는 크고 높은 뜻이 생길 수 없다.
큰 뜻을 가지고 큰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마와 수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183-
- "쌀독에서 인심 난다" 는 말이 있다.
인심은 먹고 사는 문제가 제대로 해결됐는지 여부에 따라 각박해지기도 하고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남에게 도움을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돕겠다고 나서면 사람들과 원수 맺을 일이 없다. -186-
-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한비자'를 열심히 읽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사서삼경에 코를 박고 있을 때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손자병법'과 '전국책', '한비자' 를 숙독하고 있었다. 왜란 당시 조선이 패퇴를 거듭하다 패망 일보 직전에 몰렸던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188-
- [한비자, 비내篇]
"남자는 나이 50세가 되어도 호색하는 마음이 그치질 않는다. 여자 나이 30세가 되면 미모가 쇠한다. 미모가 쇠한 부인이 호색하는 군주를 섬기면 그 자신이 내몰릴까 염려하고, 천시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자식이 보위를 잇지 못할까 염려한다. 후비와 부인들이 군주를 鸩酒짐주로 독살하거나 은밀하게 목을 졸라 죽이거나 목을 베는 이유다. 군주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은 사람이 많을수록 군주는 위험해진다.!" -191-
- 춘추시대 중엽 楚成王초성왕이 태자 상신과 상신의 스승인 潘崇반숭에게 포위당해 끝내 스스로 목을 매어 자진했다. 부부는 말할 것도 없고 피를 나눈 부모자식이라도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이런 비명횡사가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193-
- [손자병법] 만큼 제왕을 위시해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 온 고전도 드물다 철저히 인간의 '호리지성' 에 근거해 승패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덕분이다.
.......[손자병법] 은 모든 유형의 갈등과 대립, 경쟁 원리에 그대로 적용된다. 21세기라고 달라질 리 없다. 분쟁의 발발 배경과 전개 과정, 전후 결과 등을 '이익을 향해 무한 질주' 하는 인간의 본성 '호리지성' 에 입각해 정밀하게 추적한 덕분이다. -199-
- 월나라 구천王은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너는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는가!"
'門疾嘗糞' , 병문안을 가 대소변을 맛본다는 뜻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갖 굴욕을 참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달빛 아래 칼을 갈며 힘을 키우는 도광양회, 문질상분, 와신상담 과 같은 취지다.-225-
***왜 중국에는 이런 성어가 많이 생겨났을까? 유구한 역사때문에?
(출전 ; 내블로그 )
- 구천은 오나라로 들어가 신하가 됐을 때에 직접 방패와 창을 가지고 오나라왕을 위해 앞장섰다. ............월나라왕이 패자가 됐던 것은 신하가 되는 치욕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 "성인에게는 치욕이 없는데, 치욕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치욕이 없는 것이다." 라고 했다. -259-[한비자-김원중 옮김]
(*** 노자 도덕경 제71장 ;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
"聖人不病성인에게 병이 없는 것은 以其病病그 병을 병으로 앎으로서, 是以不病이는 곧 병이 아니다.건강한 것이다.라는 것이다." )
- [도덕경,제41장] 은 위대한 인재가 늦게 만들어지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한다.
"밝은 도를 지닌 자는 마치 흐리멍덩한 것 같고, 나아가는 도를 지닌 자는 마치 물러나는 것 같고, 큰 도를 지닌 자는 마치 평범한 무리와 같다. 최상의 덕을 지닌 자는 마치 골짜기와 같고, 크게 깨끗한 자는 마치 검은 때와 같다. 큰 덕은 마치 부족한 것 같고, 굳건한 덕은 마치 건성건성 일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질박하고 참됨은 마치 천박한 것 같고, 크게 모난 것은 마치 모서리가 없는 것 같다.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되고, 큰 소리는 드물게 소리 나고, 크게 본받을 대상은 구체적 형상이 없고, 도는 은밀해 이름을 지어 붙일 수 없다."-227-
- 진승과 오광은 공자 부소와 항연을 사칭하며 무리들을 끌어 모아 이들은 나라이름을 '大楚'라고 했다. 항우와 유방 등 군웅이 일거에 일어나게 된 배경이다. 진나라의 패망은 여기서 시작됐다. 후대의 사가들이 진나라는 엄한 법제로 천하를 통일했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15년 만에 패망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그토록 엄한 법제만 아니었다면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희박했다고 본 결과다. -265-
- [孤憤고분] ,외로이 분을 삭인다는 뜻이다.
한비자는 [孤憤] 에서 자신의 울분을 이같이 토로했다.
"애초부터 정황상 결코 이길 승산이 없고, 객관적인 형세 또한 함께 존재할 수도 없으니 법술에 정통한 인재가 어찌 위험하지 않겠는가? 간신들은 무함으로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을 때는 국법으로 처단하고, 그럴 수 없을 때는 자객을 동원해 목숨을 끊어버린다. 이처럼 법술을 밝히기 위해 군주의 심기를 거스른 자는 형리에게 죽지 않으면 반드시 자객의 칼에 맞아 죽게 된다.-274-
- [진책]에 따르면 한비자는 진시황 앞에서 '요가' 를 비판한 바 있다.
"요가는 3년간에 걸쳐 귀한 보물을 모두 풀어 유세에 나섰으나 국내의 귀한 보물만 모두 바닥내고 말았습니다. 원래 그는 위나라 문지기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위나라에서 도둑질을 하고, 조나라에서 벼슬을 살다가 쫓겨난 자입니다. "
이에대해 '요가' 가 대답했다.
"강태공은 아내에게 쫓겨난 필부로 원래 썩은 고기나 팔다가 문을 닫은 백정 출신입니다. 그런데도 주문왕은 그를 등용해 王者가 되었습니다. 관중은 제나라의 장사꾼 출신으로 원래 제환공을 죽이려다가 간신히 석방된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제환공은 그를 등용해 패자가 되었습니다. 명군은 신하의 미천함을 따지지 않고, 과거의 비행을 따지지 않고, 오직 자신을 위해 쓸 만한 인물인지 여부만을 살필 뿐입니다."-276-
- 공자,맹자,순자등은 학덕을 연마하기만 하면 길을 가는 필부일지라도 군자는 물론,능히 성인도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엄밀히 따지면 현자와 불초한 자의 차이 또한 백지 한 장 차이밖에 없다. 한비자는 군주 또한 '爪牙'조아를 잃는 순간 그 '조아'를 취득한 신하에게 이내 제압당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293-
- [한비자,팔설]
" 시고 달고 짜고 싱거운 맛을 군주 자신의 입으로 판단하지 않고, 요리 담당관인 '재윤' 에게 맡기면 주장의 요리사들은 군주를 가볍게 여기고 재윤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높고 낮고 맑고 둔탁한 소리를 군주 자신의 귀로 판단하지 않고, 음악 담당관인 樂正에게 맡기면 악대의 맹인 악사들은 군주를 가볍게 여기고 악정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치국 과정의 시비를 군주 자신의 법술로 결단하지 않고 총신에게 맡기면 조정의 다른 신하들이 군주를 가볍게 여기고 총신을 더 소중이 여길 것이다. 군주가 친히 정사를 관장하지 않고 재결의 대권을 신하들에게 넘기면 군주는 곧 더부살이하는 꼭두각시 신세가 되고 만다. "
또한 한비자는 높은 자리에 실권을 지닌 重臣을 두지 말라고 충고했다.
"명군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존귀한 자리에 앉은 貴臣은 있을지언정 핵심적인 자리에 앉은 重臣은 없다. 貴臣귀신은 작위가 높고 관직이 높은자를 말하고, 중신은 건의가 그대로 채택되고 실권을 지닌 자를 말한다. 명군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승진이 직급의 순위에 따라 진행되고, 관작의 수여가 공에 따라 주어지는 까닭에 貴臣귀신만 존재한다. 신하가 실행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섣불리 말했다가 이후 거짓이 드러나면 반드시 중벌을 받는 까닭에 중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 -323-
- 진시황의 막내아들 '호해'와 가까웠던 환관 '조고' 의 입장에서 볼 때 몽씨의 지지를 받고 있는 태자 '부소' 의 즉위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소의 즉위는 곧 그의 죽음을 의미했다. 정적인 몽념과 대립하고 있던 승상 '이사' 가 몽념의 전면 부상 가능성을 언급한 조고의 설득에 넘어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중요한 것은 조고가 일족의 안녕을 위해 함양을 향해 진격하고 있는 유방에게 협상을 제의하면서 자신의 옹립한 2세 황제 호해를 시해한 점이다. 호해 3년( 기원전 207년 ) 8월에 빚어졌다. 한비자는 권신에게 대권을 빌려줄 경우 군주는 이내 허수아비가 되어 목숨을 부지키 어렵다고 경고한 바 있다. -354-
- "良藥苦口"좋은 약은 입에 쓰다. "良藥苦口"
[한비자,외저설 좌상篇]
"무릇 양약은 입에 쓰지만 지혜로운 자는 이를 즐겨 마신다. 양약이 몸에 들어가면 자신의 병을 고쳐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명군은 이를 즐겨 ㄷ듣는다. 충언을 들으면 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夫良藥苦於口 而智者勸而飮之, 知其人而已己疾也. 忠言拂於耳, 而明主聽之, 知其可以致功也..."
"良藥苦口" 구절은 法術을 아는 신하를 곁에 두고 천하를 다스리라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359-
- 병가에서 말하는 '절도' 는 진퇴를 자유자재로 하며 결정적인 계기가 왔을 때 힘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폭발시키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때 변방을 지키는장수의 명칭을 節度使로 칭한 이유다. 朝鮮朝도 각 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일을 맡아보던 정3품 외직 무관을 수군절도사, 각 지방의 병마를 지휘하던 종2품의 외직 무관을 병마절도사로 불렀다. -382-
- [한비자]는 인간관계학과 권력관계학의 보고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관계와 권력관계의 기술을 [한비자] 처럼 깊숙이 천착한 저서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론과 내용의 질과 규모 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430-
- [한비자,오두 篇]
"흉년이 든 이듬해 봄에는 어린 동생에게도 먹을 것을 주지 못하지만, 풍년이 든 해의 가을에는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음식을 대접한다. 이는 골육지간을 멀리하고 나그네를 아끼기 때문이 아니라 식량의 많고 적음에 따른 것이다. 옛날 사람이 재물을 가볍게 여긴 것은 어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재물이 많았기 때문이고, 요즘 사람이 재물을 놓고 서로 다투는 것은 인색하기 때문이 아니라 재물이 적기 때문이다." -431-
-.........-540-끝.그냥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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