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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저녁 풍경- 오정희 지음

최해식 2018. 1. 29. 14:28

-여느 때처럼 나는 부엌에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평소보다 일찍 귀가한 남편은 거실의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저녁6시, 불을 켜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햇살이 물러간 실내에는  물빛 같은 그늘이 밀려들고 있었다. 서쪽으로 난 부엌 창을 통해 불그레하게 노을이 깔리는 하늘과 바람이 잦아듦에 따라 해묵은 나무의 무성한 이파리들이 고요해지는 것이, 고단한 새들이 깃들 곳을 찾아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밤과 낮이 서로 스미어 섞이고 번지는 해질녘이란 무엇인가. 빛과 어둠이, 현실과 환상이, 존재와 부재가, 이승 과 저승의 경계가 흐려지고 무너지는 시각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 내내 옥죄고 있던 일상의 시간에서 잠시 비켜서서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사색하게 되는 것이다.

음악방송으로 다이얼을  고정시킨 라디오에서는 가벼운 고전음악이 흘러나오고  창밖 저만치 먼 곳에서는 이 도시로 들어오거나 떠나는 기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적막하다면 적막하고 덤덤하다면 덤덤한 상황이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똑같이 되풀이되는 평범한 저녁이었다.

쌀을 안치고 바삐 찬거리를 손질하던 나는 문득 일손을 멈추고 거실과  주방의 트인 공간을 일별하였다.

어두워지는 시각, 넓지 않은 한 공간에서 말없이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정황이 연극 무대 위의 한 장면이거나 오래된 흑백영화 화면 한 컷처럼 아득히 보이며 그와함께 어떤 예상치 못했던 감정 즉 언젠가 훗날, 이 저녁의 정경이 나를 가슴 에이게 하고 울게 만들 것이라는 돌연하고 확실한 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또한 바로 이 순간이, 누리는 순간 이미 잃어버리는, 그래서 현제이면서도 그리움이라고 다분히 과거형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의 실체라는 것도, 그것은 우리들의 앞날을미리 보는 듯한,  나 자신이 이미    이승을  떠난 혼이 되어 떠돌며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았던 집으로 돌아와 안타깝고 그립고 정답게 안을 엿보는 듯한, 비현실감과 쓸쓸함이기도 했다.

우리 둘 중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나 다시 만나거나 함께 할 수 없을 때 남겨진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워하고 돌이키고 싶어하게 되는 것은 뛸 듯이 기뻤던 일도 어떤 성취의  만족감도 아닌, 이러한 사소한 일상의 풍경들이 아닐까.

사랑이거나 정이거나 연민이라는 둥 한마디로 표현하거나 정의할 수 잇는 것이 아닌, 아주 멀고 고달픈 길을 함께 걸어왔다는 느낌. 그것은 우리가 함께 해온 인생에 대한 총체적인 느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평범한 저녁은 오래 전, 어쩌면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과도 같았고   이 순간을 얻기 위해 허덕허덕 그 먼 길을 함께 걸어왔는가 하는 탄식이기도 하였다.

우리의 존재는 서로에게 무엇이며 우리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오랜 세월, 부부라는 이름으로 한 묶음이 되어 살아왔지만 그는 그의 시간을 살았고 나는 나의 시간을 살아왔을 뿐임을 알면서도, 종내 어딘가 모를 곳으로 혼자 떠나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물음은 둘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보다 더 많이 혼잣말 속에서 끈질기게 머리를 들곤 하였다.

부부사이의 감정이란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오욕칠정의 극단까지 시험하게 되는 시금석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30년이 넘어 초로의 나이에 들어 섰고 아이들이 일찍 떠나 이른바 빈 둥지가 된 지 오래다.

사는 숨 가쁨이 어느 정도 여유를 얻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앞으로의   날들이 지나온 날들에 비할바 없이 짧게 남아 있다는 가슴 서늘한 자각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지나날을 더듬어보는 일이 더러 있다.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에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족의 울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느 것, 이 세상에 뿌리내리고 현실적 삶을 살고자 하는 안간힘도 있었다.

가정 안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가족과의 분리가 이루어졌다는 뜻도 될 것이다. 불투명하고 불안한 미래와 맞서 고통과 방황이 심했던 20대 후반,  결혼과 일은 막중한 과제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이 컸지만 솔직히 결혼에는 외로움이 해소되고 현실적 삶의 안전한 배수진이 되리라는 기대와 의미 부여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 날 아침의 그 이상하고 ㅂㄱ복잡했던 심정을 기억한다. 뭔가 이렇게 결정된다는 것에 어리둥절했고, 이 낮선 상황에서 달아나고 싶고, 이제껏의 모든 과정과 절차를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다는 충동이 스스로에게 무서웠다.

대개의 신부들은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 그 화사한 겉모습과는 달리 어느 정도 불안감과 착잡한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결혼식 날 너무 좋아한다고 흉잡힐 정도로 활짝활짝 웃던 친구는 훗날 너무 두렵고 불안해서 그렇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결혼이 이 험한 세상의 안전한 닻이자 자신의 존재를 옭아매는 덫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동화는 아리따운 공주와 잘생기고 씩씩하고 고귀한 신분의 왕자가 목숨을 건 시련과 모험 끝에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 결혼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리고 현실의 젊은이들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에 걸쳐 그 뒷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고통을 겪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는 고단한 세월의 이야기들을.

신혼의 짧은 시간을 보내면 결혼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누군가와 부부가 되어 함께 산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거구나 하는 가슴 서늘한 느낌과 함께 결코 만만치 않은, 살아간다는 일에의 두려움과 긴장이 생기기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30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결혼 생활의 쓴맛도 고달픔도 알게 되는 나이이면서 여성ㅇ로서의 정체성과  한 인간으로서의 실존적인 고뇌, 내게 나아 있는 가능성를 따지며 무엇을 새로이 시작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는 초조함이 극도에 달했던 때였다.

내게 남아 있는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일까.  이게 다일까. 이게 인생인가. 안주하려는 욕망과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이 팽팽히 길항하는 나이, 이른바 내적 방황이 심화되는 시기였다.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엄연했지만 바람 부는 빈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외로움과 상대방에 대한, 삶에 대한, 자신에 대한 환멸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幻환을 滅멸한 자리에 비로소 명징함이, 본모습이 드러나느 게 아닌가. 자신에 대한  신비화를 벗어나야 비로소 세상의 타인의 삶의 신비가 보이는 것처럼.

아이들이 자라 성년이 되어 집을 떠나자 생물로서의 한 살이 의무를 끝낸 해방감과 함께 비로소 허옇게 머리 세어 가고 후줄근히 등 굽은 남편의 모습이 마주 보였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더 이상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자 출산과 함께 부여되었던 엄마 아빠로서의 역할과 직분이 끝나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위치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이제껏 이어온 관계의 진실성을 성찰하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과 감정에 정직해야 할 때가 되었다느 뜻이기도 할 것이다.

처음 결혼을 결정할 때처럼, 우리가 계속 사랑하고 노력하면서 남은 생을 함께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습관적이고 어떤 필요에 의해 마지못해 이어오던 관계를 이쯤에서 끝내고 각자의 생을 자유롭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면 그 이후의 삶은 훨씬 평화롭고 가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관습, 변화에의 두려움, 경제적인 문제 등 여러가지에 걸려 표면화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기르고 생활의 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이루어 지고 난 시점에 이르러 많은 부부들이 내심 그러한 갈등을 겪는 것일 게다.

  미국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에 의하면, 일정 기간에 걸쳐 암수 한쌍이 새끼를 낳고 함께 키우는 동물은 전체 동물의 3퍼센트 정도에 불과한데 이렇게 짝짓기를 하는 동물도 대개 자식들을 완전히 키운 뒤에는  짝 관계를  청산한다고 한다.

이러한 행동, 즉 짝짓기에서부터 자식 키우기, 사랑의 종말은 각기 종족이 갖고 있는 고유의 DNA에 내포된 생화학적 변화에 기초하고 있으며 인간의 경우 그 주기는 대략 4년이라고 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타인과  평생을 함께한다는 것은 생물학적 본성에 역행하는 것으로 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며그 부자연스러움을 지탱하기 위해  인간사회는 여러 법칙과 장치를 두고, 결혼에의 가치 부여와 미덕을 의식화시켰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오래 전에 장기려 박사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북한에서 살았던  젊은 시절, 어느 날 낮에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느 아내의 모습을 보며 불현듯 이 사랑이 영원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후 한국전쟁이 일어나 장기려 박사는 잠시 피신할 요량으로 가족들은 남겨둔 채 맏아들만 데리고 남쪽으로 나왔는데 그것이 남북으로 갈린 부부의  영이별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랑이 영원하리라는 한순간의 확신은 그를 평생 북의 아내를 그리워하며 독신으로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인술을 베푸는 성자의 삶으로 이끌었다.

북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40여 년이 지나 어려운 경로를 거쳐 애절한 사연들을 주고 받게 되었지만 끝내 이승에서의 상봉은 이루지 못한 채 두 분 다 세상을  떠났다. 가벼이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이 부박한 세태에 그 부부의 사랑는 전설이 되었다.

남녀가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는 것이 결코 행복과 기쁨 그 자체만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시고 떪고 맵고 짠 신산한 생활이지만 때로는 유한한 우리 인생에 그렇게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지복으로 보상해주기도 하는가 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