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62/ 은수저 - 나카 간스케 지음,양윤옥 옮김

최해식 2015. 12. 9. 19:29

수-151209대출받음. 1215읽음.

-[ 이 책에 보내는 찬사]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님은 나카 간스케의 [은수저] 한 권을 중학교 3년 동안 읽어나가는 독특한 방식의 국어수업을 창안하고 실행하였다. 이 수업을 받고 자란 학생들이 고베 시의 무명 사립학교를 도쿄대학 최다 합격자를 배출한 명문교로 위상을 높였고, 현재 1천여 명 제자들이 정치,경제,문화,학문,예술 등 각 분야에서 대활약하고 있다.  [이토 우지다카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의 저자

 

- 이 책은 1885년에 출생한 저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써내려간 자서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 특히 어린아이의 세계에  대한 묘사가 깔금하고 상세하다는 점, 문장의 여운이 훌륭하다는 점 등을 나쓰메 소세키가 절찬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자연묘사의 아름다움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앗다. 의태어와 의성어를 섞어 꽃이며 풀의 향기,동물의 울음소리,인물의 체온이며 냄새,목숨이 없는 것의 풍정이나 감촉까지 느껴지게 한다.심리 묘사에도  뒤어나다.  [오기 나오키(교육평론가) }

 

- (베껴쓰기)

온갖 잡동사니들을 죄다 넣어둔 내 책장 서랍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작은 상자 하나가 들어 있다.코르크 재질 나무판의 각 이음새마다 모란꽃 무늬 색지를 붙였는데 아마 원래는  서양의 가루담배를 담는 상자였을 것이다. 딱히 내세울 만큼 아름다운 물건도 아니지만 나무의 색감이 수수하고 손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운 것하며 뚜껑을 닫을 때  톡 튀는 소리가 나는 것 때문에  지금도 내 마음에 꼭 드는 물건 중의 하나다. 안에는 별보배고둥이며 동백나무 열매, 어릴 때 갖고 놀던 자질구레한 것들이 가득 들어 있다. -11-

 

그중에 한 가지,진기한 모양의 은수저가 있다는 건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 6밀리쯤 되는 오목한 접시 모양의 길둥근 숟가락에 살짝 뒤로 젖혀진  짤막한 자루가 달린 것인데, 제법 도톰하게 만들어서 자루 끝을 손으로 들어보면 약간 묵직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때때로 작은 상자 안에서  그 은수저를 꺼내 뿌옇게 서린 먼지를 정성껏 닦고 오래도록 가만히 바라보곤 한다. 우연히 이 작은 숟가락을 찾아낸 것은 지금부터 따져보면 참으로 옛날 옛적의 일이었다.

집 안에 오래된 찬장 하나가 있었다. 깨금발을 딛고서야 가까스로 손이 닿을 무렵부터 나는 그 찬장 선반을 열어보고 서랍도 빼보곤 했다. 하나하나 감촉이 다르고 저마다 생소한 삐거덕 소리를 내는 게 무척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모갑玳瑁甲 손잡이의 작은 서랍 두  개가 나란히 달렸는데 한쪽 서랍이 몹시 뻑뻑해서 아이  힘으로는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점점 더 호기심이 나서 어느 하룻날에 한참을 끙끙거린 끝에 마침내 억지로 서랍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12-

 

그러고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안에 든 것을 방바닥에 엎어놓고 보니 풍진風鎭이니 인롱印籠의 허리꽂이 같은 물건과 함께 그 작은 은수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 은수저를 꼭 내 것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곧장 어머니에게 달려가 말했다.

"이거, 나 주세요."

안방에서 코안경을 쓰고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는 잠깐 뜻밖이라는 표정을 보였지만,

"잘 간수해야 한다."

하고 여는 때 없이 금세 허락해주시는 바람에 나는 기쁘기도 하고 조금 맥이 빠지기도 했다. 그 서랍은 우리 집이 간다에서 이곳 야마노테로 이사할 때에 살짝 어긋나면서 도무지 열리지 않는 상태가 되었고, 그 바람에 유서 깊은 이 은수저도 어느새 어머니에게조차 까맣게 잊혀버린 것이었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면서 그 유서를 이야기해주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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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패질하는 곁에 서서 대패의오목한 곳에서 대팻밥이 빙그르르 돌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넋을 놓고 바라보면 '사다'氏는 항상 깨끗해 보이는 것을 골라 집어주곤 했다. 피가 흐를 것처럼 싱싱한 삼나무나 노송나무 대팻밥을 핥아보면 혀와 뺨이 오그라드는 듯한 맛이 난다. 톱밥을 소복하게 양손으로 퍼서 손가락 사이로 술술 흘려보내면 손 틈새마다 향기가 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40-

 

- 저녁나절이 되면 잠자는 방 앞의 도도록한 산호수珊瑚樹 덤불에 참새들잉 잠잘 곳을 찾아 떼로 몰려와 고개를 흔들어가며 부리를 닦거나 앞 다투어 가지를 쪼아 먹느라 소란스럽다. 해님이 숨어버리고 이윽고 얼마 남지 않은 약한 햇살도 사라지면 한 마리 두 마리, 잠들지 못하던 놈들까지 잠들어 조용히 가라앉는다. -66-

 

- 비가 온 뒤에는 고개 숙인 삼나무 울타리의 새싹에 물방울이 맺혀

반짝반짝 빛났다. 그 울타리 밑동을 흔들면 일시에 후드득 떨어지는 게 재미있었다. 잠시 기다리면 다시 조금 전처럼 조롱조롱 물방울이 맺혔다.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 색깔도 서서히 빛이 바래면 뒤에서 몰래 기다리고 있던 달이 은은하게 비친다. -103- 

 

- 히라가나의 <> 라는 글자는 어딘가 여자가 무릎을 접고 앉아 있는 옆모습과 비슷하다. -127-

 

-남빛으로 투명한 물 위를 돛단배가 은빛으로 반짝이며 건너갔다.-129-

 

- 다른 아이들은 벌써 끝내고 돌아가는데 나 혼자 삶은 문어 같은 꼴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으닌 이건 정말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힘든 것이 독본讀本이었다. 나는 맨꼴찌로 선생님 책상 앞에 불려나갔다. 문제는 蔚山의 농성 이라는 대목이었다. 울산이란 글자는 그때까지 한 번 본 적도 없었다. 나는 가토 기요마사가 면나라 군사에게 포위되는 삽화만 빤히 들여다볼 뿐 내용은 도통 알지 못했다. -137-

(참고글) 蔚山의 농성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제2차 조선 침략에 파견된  가토 기요마사 일행이 1597년 경상도 울산에서 조선과 명나라 군사에 포위되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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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타비' ;

버선은 일본어로 '다비' 라고 한다. 이 말이 두 번 겹쳐지는 '다비타비' 는 '번번이, 자주 '  라는 뜻.

'야리야리' ;

창槍은 일본어로 '야리' 라고 한다. 이 말이 두 번 겹쳐지는  '야리야리' 는 '때마다,철철이' 라는 뜻이다. -160-

 

- 후편 ;

청나라와의 전쟁이 시작된 뒤로 우리 반 아이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애국정신이니 중국 오랑캐니 하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더구나 선생님까지 합세하여 마치 개라도 선동하듯이 무슨 말만 나오면 애국정신과 중국 오랑캐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그것이 진심으로 못마땅하고 불쾌했다. 선생님은 중국에 예양이나 비간比干같은 의인이 있었다는 말은 입도 뻥긋하지 않고,쉴 새 없이 원군元軍의 침공과 조선 침공 같은 이야기만 했다 -187-

 

- 지칠 대로 지친 걸음으로 총총히 형의 뒤를 따라가는데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가니 집 근처에 가기도 전에 해가 꼴딱 저문다. -199-

 

-(베껴쓰기)

바위투성이 곶의 발치쯤에 외따로 서 있는 조용한 여관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해가 저물기 시작해서 그 해를  껴안고 불타오르는 구름이 바퀴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빨갛게 변하고 서서히 보랏빛,남빛으로 변하더니 하늘 색깔과 하나가 되어 사라져갔다. 마루 기둥을 붙잡고  곶에 달려와 부서진 파도가 인광燐光을  내뿜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목이 메어 눈물이 쉴 새 없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것을 기둥에 몸을 비비며 꾹꾹 억누르면서 어서 빨리 날짜가 지나 집에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비를 머금은 바람이 휘이잉 소나무를 울리고 툭툭 튀어 오르듯이 벌레 울음소리가 들렸다. -205-

 

- 길게 휘어진 그 손가락 사이로 배가 빙빙 돌아가고 하얀 손등을 넘어 노란 껍질이 구름 모양으로 빙그빙글 밀려나왔다. 단물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누님은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라면서 내 접시에 얹어 주었다. 그것을 베어 먹으면서, 아름다운 버찌가 누님의 입술에 살짝 끼워져 혀 위로 도르르 굴러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앗다. 조개처럼 예쁜 턱이 몽실몽실 움직였다. -267-

 

- 살갗이 써늘해지도록 화단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그 전날보다 한층 더 불구가 된 달이 산 너머에 접어들 무렵에야 방으로 들어왔다. -270-

 

- [은수저]의 전편은 1912년 여름 신슈 노지리 호반에서 쓰여졌고, 작가는 그때 스물일곱 살이었다.

이 첫 산문 작품의 가치를 가장 먼저 인정해준 것은 일본의 '셰익스피어' 라고 하는 '나쓰메 소세키'였다.  소세키는 이 작품이 어린이의 세계를 묘사한 것으로서는 미증유의 작품이라고 크게 칭찬하였다. 

[은수저] 후편은 1913년 여름에 에이잔에서 쓰여져다. 소세키는 이것을 전편보다 한층 더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 -272-

 

-............-287-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