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 고대사 / 한국인의 일본사 - 정혜선 지음

최해식 2014. 7. 1. 20:42

-세계에서 먼지도 셀 수 있는 지역이 있다면, 아마도 일본일 것이다. -11-

 

-인류가 처음 출현한 것은 300만 ~350만 년 전이고, 세계 4대 문명권의 형성은 겨우  5,000년 전이다. 오늘날의 첨단 문명은 불과 200년 정도의 산물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마치 전체인 양 생각되는 우리 인생도 장구한 역사 속에서는 하나의 점인지도 모른다.-22-

 

-1992년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의  '가미타카모리' 의 구릉에서 구석기유물 발굴 날조 사건이 이루어졌다.

국가와 관련한 부분에서만큼은 , 집단의 열망 속에서 거짓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일본인이다. -26-

 

-조몬 시대 : (BC 10,000~ BC 3세기 ) 10,000년간 지속 됨.

신석기人이다.  이들이 사용하던 토기를  '조몬'토기라 부른다.

 

일본은 섬이라는 자연 규제를 뛰어넘을 수 없어,  조몬 시대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문명,  즉 농경과 청동기 시대로 도약할 수 없어 무려 10,000년 간 조몬 시대로 지속 되었다.

열도라는 고립된 위치와 절박한 자연환경으로 부터 파생된 것들은 강인하게 살아남아 현재까지 일본 역사의 큰 기초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조몬 시대는 일본 역사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31-

 

-최초의 문명: 야요이 시대 (BC 3세기 ~ AD 3세기 까지 약 600년 이다)

이 시대에 이르러 식량 채취 단계에서  (식량 생산하는)  농경사회로 되었다.-33-

-야요이 시대, 한반도는 전란과 격동의 시기이다.

BC 2C에 '위만조선'이 성립. 

BC 1C에 한사군' 설치됨.

이에 쫓겨난 세력 ->  남쪽 삼한의 원주민을 지배 ->  삼한의 원주민 은 ->  일본 열도로  이주 함.  (문명의 전파길 :  김해-> 쓰시마->  이키->  규슈 북부->  긴키 지방 ) -35-

 

-도쿄 대학의 '하니하라 가즈오' 교수는 ,  " 일본인은 단일 민족이 아니고 소수의 원주민과 다수의 한반도 이주민 혼혈로 이루어졌다 "는 사실을 발표했고, 더나아가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 일본인의 뿌리는 한국 "이라고 단정했다.

한반도인의 이주는 '야요이 시대에 시작하여 '고분 시대 ' 에 절정에 달했다.   야요이 시대에 는 한반도 남부에 살던 사람이 주류였고,  이후는  '가야인, 백제인으로 대체되었다.

긴키 지방에 집단 이주하여 부족간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대수장들이 대왕을 중심으로 연합하여 ' 야마토 ' 정권을 형성하여  (나중에,후일 )대왕은 명칭이 '천황' 으로 바뀌게 되었다. - 43-

 

- " 귤이 바다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

한반도인이 가져 간 한국 문화 (귤) 는 일본 열도에 정착하면서 한국과는 다른 성격의 문화 (탱자) 가 되었다.

일본 문화는 일본 열도라는  다른 환경 안에서 적응하며 만든 '새로운 문화' (탱자) 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45-

 

-일본 최초의 국가  :  야마토 시대(=고분 시대) <4세기 초~ 712 >

야마토는 지금의 나라 현으로 긴키 지방에 있다.  야마토 정권의 대왕 후손이 오늘날의 일본 천황이다.  이 대왕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단군과 같은 존재이다.

'닌토쿠' 대왕릉 은 길이가 486m나 되어 세계에서 가장 큰 고분이다.

하루 2,000명 동원하여 15년 8개월 걸렸으므로 이에 '야마토' 정권은 '닌토쿠' 대왕릉을 만들 정도의 강력한 지배 세력이 되었다.-45-

 

-아스카 시대:

'쇼토쿠' 태자가 섭정을 담당한  '스이코' 대왕 시대를 전후 100년간 이다.  당시 수도가 '야마토'의 '아스카' 지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쇼토쿠' 태자는 593년~ 622년 서거할 때까지 30년간 일본 고대사의 기틀을 확립했다. -50-

 

 

-천상의 세계, 아스카 문화 -

부여를 닮은 아스카,  백제인이 만든 아스카 문화 ;

 

1월에 찾아간 아스카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 구불구불한 논두렁,좁은 흙담길 옆 농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한국의 농촌을 닮았다거나 부여를 닮았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공연한 소리가 아니었다.  같이 답사에 참가한 사람들도 똑같은 말을 했다.  이국적인 낯선 일본에서 돌연 펼쳐지는 너무도 낯익은 풍경을 목격하며 대단히 즐거웠고 들뜬 감정이 되었다.  신천지를 찾아 갖은 고생 끝에 자신의 고향과 닮은 땅을 찾아내고 안도하는 한반도인이 저절로 느껴졌다. 

'아스카' 라는 이름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당도한 땅을 '안숙安宿' 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안숙이라는 말이 '아스카' 라는 말로 변한 것이다. 

일본 최초의 절인 '법흥사' 를 지키던 승려는 고구려의 혜자였는데, 혜지는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다.

'나라奈浪' 의  '법륭사' 는 일본 국보 1호로,  1993.12월 일본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됨.

본당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법륭사' 장내를 다니고 나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아! 좋다' 는 느낌 이상이다.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경건함이 배어 나온다.  그렇지만 전혀 억압적이지 않고, 오히려 자유로움을 수반하는 경건함이다.  말할 수 없는 편안함도 느껴진다.  문화재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그냥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니, 법륭사는 자연을 닮았고, 우주와 하늘의 솜씨가 그대로 배어 있으며, 인간의 큰 정신을 담아내고 있었다.

법륭사에는 그것을 만들고 그려 낸 예술가가 지닌 세계와 정신이 그대로 전이되어 있다. 

문화는 물질이 있어야 비로소 싹트고 발전한다.  그러나 물질만으로는 그런 문화재가 나올 수 없다.  물질의 세계를 넘어서 인간의 온갖 번내를 넘어 존재하는 사바 세계에 대한 갈망, 그리고 갈망이 끝까지 다하면서 펼쳐지는 초극과 사바의 지점.....  나는 그런 신심信心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법륭사' 에서 보았다.  나는 정말 편안한 마음이 되어 그 감동에 젖어 들었다.  배고품도 잊어버릴 정도로.

 

'법륭사'에는 담징의 금당벽화, 대보장전에 있는 '백제 관음상' 이 있다.

 '광륭사' 에 있는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은 아스카 예술의 정수를 보여 주는  일본 국보 1호 이다.  이 불상은 한국 국립 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아스카 문화를 답사하면서 한국인들의 예술가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발견은  놀라움이었다.  '정말 잘 만들었다' 는 정도가 아니다.  경외감, 그 자체였다.  그냥 무릎이 꿇어진다. 

한국의 문화재에는 하늘을  향해 높이 비상하는 염원과 소망이 담겨 있다.  인간의 작품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장인 정신' 으로 이름 붙이기엔, 그 단어가 너무도 왜소하다.  입신의 경지, 천상의 것을 만들어 내는 솜씨이다.  도대체 저런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어떤 내면을 지녔을까?  그러한 인간을 길러 낸 한반도 지역은 대체 어떤 풍토였을까? '하늘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을 지닌 땅이지 않았을까?  중국 옆에 조그맣게 붙어 있어 수많은 좌절을 겪으면서도 끝내 자기를 지키며 끈질기게 살아남게 한 에너지는 하늘이지 않았을까?  아무리 상처받아 처참해져도, 인간에게는 하늘 같은 마음이 있다는 믿음이지 않았을까?  내가 태어난 곳, 나를 키워 준 곳, 너무도 익숙한 세계여서 제대로 눈길을 보내지 않았던 곳, 그 한국 문화의 뿌리를 아스카 문화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한국 문화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아스카 문화는 일본이 성숙한 고대 국가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단계를 채워 주었다. 일본은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를 쌓으며 동아시아 국제 무대로 진입해 갔다.-52~59-

 

-거대한 중국 옆 한반도는 중국이 침입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껴안고 살았다.  이민족이 침입하여 자신의 익숙한 세계가 파괴괼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두려움.  이거은 한국에 항상 존재하는 두려움이엇다.   중국의 선진 문명을 소화하여 정착시켜야만  비로소 중국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생존할 수있엇기 때문에 한국은 필사적으로 중굵문면을 베워왕권을 강화 시켰다.  권력이 분산되는 것은 몰락을 의미했다.  

이러한 력사적 환경은 눈물겹기도 했지만 결국은 동양 문명의 본질과 정수를 소화함으로써 다양한 문화 원형을 보유할 뿐만 아니ㅇ라 보편적 휴머니티와 같은 큰 사상, 큰 게게관으 지닌 탁월한 한국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거이 한국 문화의 장ㅇ점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우리는 문화 콘텐츠의 무진장한 보물을 갖게 된 것이다.

고난은 인생을 배우는 학교이다.  고난이 주는 고통은 무척 아프지만, 아픈 만큼 인간을 성숙하게 해준다. 

주변 강대국들의 거대한 도전에 지치지 않고 응전한 우리의 역사적 환경은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75 -

 

 

 

 

 

 

 

 

 

 

3. 조몬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