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소나기 - 황순원 지음

최해식 2015. 9. 3. 18:47

- 소설 공부를 열심히 할려는 사람들은 [소나기] 를 원고지에 직접 옮겨 적으면서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고, 사건의 전개과정은 어떤지,소녀의 죽음으로 끝내면서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라. -244- [글쓰기가 삶을 바꾼다 -김종철 지음]

-모든 문장이 열 단어를 넘기지 않을 정도로 짧고 간명하다. 문단도 경쾌하게 바뀐다. -242- [글쓰기가 삶을 바꾼다 - 김종철 지음]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초시네 증손자딸이라는 걸 알 수 잇엇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는 개울기슭에서나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잇엇다.  소년은 개울둑에 앉아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요행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소녀가 길을 비켜 주었다.

다음날은 좀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이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잇엇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 올린 팔과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물속을 빤히 들여다본다. 얼굴이라도 비치어보는 것이리라. 갑자기 물을 움켜낸다. 고기새끼라도 지나가는 듯.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을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자리를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각돌이엇다. 그리고는 훌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건너 뛰어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어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달린다. 갈밭 사잇길로 들어섰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갈꽃뿐.

이제 저쯤 갈밭머리로 소녀가 나타나리라.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됐다. 그런데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발돋움을 햇다. 그러고도 상당히 지났다고 생각됐다.

저쪽 갈밭머리에 갈꽃이 한 움큼 움직였다. 소녀가 갈꽃을 안고 있엇다. 그리고 이제는 천천한  걸음이었다. 유난히 밝은 가을 햇살이 소녀의 갈꽃머리에서 반짝거렸다. 소녀 아닌 갈꽃이 들길을 걸어거는 것만 같았다.  소년은 갈꽃이 아주 뵈지 않게 되기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문득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내려다보았다. 물기가 걷혀 있었다. 소년은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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