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99 / 나이듬의 즐거움 - 김경집 글

최해식 2015. 7. 25. 10:25

-150912빌렸다. 150914읽음.

 

- 힘들고 버거운 하루를 지내본 사람만이 다음날 평화의 달콤함을알 수 잇습니다. 가뭄 뒤 단비처럼,장마 뒤 무지개처럼반갑고 고맙습니다-24-

 

-(관련글)

[속 차고 겸손한 당당함이 드러나는 나이] ;

산 중턱에 자리잡은 약수터에서 부지런히 물을 받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분들은  대부분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것 같아서 보기에도 좋습니다. 아마 그분들이 그 무거운 물을 받아서 내려가시는 까닭은 집에잇는 식구들에게 좋은 물을 먹이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더ㅔ 그 어르신들이 그렇게 건강한 것은 그 물을 마셔서가 아니라 그 물을  마시기 위해 힘들게 산에 오르셨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긱이 들더군요. 어쩌면 집에 남아 떠다준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그렇게 건강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산에 올라 몸의 묵은 찌꺼기들을 긁은 땀방울에 담아 내보내며 숨을 헐떡거리고  장딴지에 뻐근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냉장고 문을 여는  수고만으로 들이키는  그 물은 그냥 물일 뿐이니까요, 이처럼 약수는 산에  오른 운동의 동무 삼아 마실 때 비로소 제값을 한다는 생각은 버리기 어렵습니다. -76-

 

 

 

- 온 가족이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에서나 겨우 모습이 드러나느 아버지의 자리는 그늘을 만들어준는 느티나무처럼 하나의 배경으로 나타납니다.  .................. 비온 뒤 나무처럼  한 뼘씩 쑥쑥 자라난 자식놈들의 성장이 뿌듯해서 자신의 늙어감은 미처 느끼지 못하는, 그러다가 문득 그들이 자기 머리 위 한 뼘 더 서 잇을 때 비로소 섭섭한 감격을 느끼는 아버지들,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 여겨집니다.-35-

 

- 정말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건 지금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삶입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개선문보다는 보르도의 포도밭에 가고 싶고, 런던 브리지나 버킹엄 궁보다는 스코틀랜드의  초원에서 한가롭게 산책하고 싶습니다. -54-

 

- '복숭아와 오얏은 말이 없지만 그 아래로 저절로 길이 난다.(도리불언 하자성로)' 라는 말잉 있습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의 <장군 이광편>에 나오는 인용문입니다.  漢나라의 명장 이광은 전략과 전술면에서도  뛰어났자만 부하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자신도  까칠한  음식을 함께 먹었고 사막을 헤매다가 물을 얻었을 때  자신보다 병사들에게 먼저 마시게 함으로써 그들이 저절로 머리 숙이고 충성을 다짐하게 만든 사람이다.  아버지도 솔선해서 모범을 세우고 배려하며 존중해주면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제 일을 스스로 하고 아버지로서 존경합니다. -56-

 

- 내 나무에는 어떤 열매를 맺을까. 나를 찾는 이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늘 새기며 더 큰 나무,더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는 거시 참 소중한 세상입니다.  그 길은 내가 만드는 거이 아니라 내 열매가 만들어내는 길입니다. 나는 어떤 나무인가?  새삼 곱씹어보게 만드는 인생의  길잡이 책[사기]는 정말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 책이 이미 위대한  열매이기에 저절로 사람들이 그 책에 모이는 것이니, 좋은 책이야말로 저절로 길을 내게 하는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책처럼 살고 싶습니다. 복숭아나 오얏은 되지 못해도 그저 넉넉하고 너그러운 그늘이라도 내 줄 수 잇는 나무가 되고 싶슴니다. -58-

 

-늦은 밤 텅 빈 거리를 외로이 핥고 있는 가로등 위로 너그럽게 드리운 달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도 설렘도 없이 무디고 딱딱하게 살아왔다는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남습니다.-60-

 

-푸르뫼 靑山은 계곡 물 우당탕 시끄럽게 앞을 다퉈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지요.  혼자 걷는 저 산이 외롭지 않은 것은 바람이며,별이며,달이 찾아오기 때문일겁니다.-61-

 

-다른 갈매기들이 그저 갈매기로만  살아가는 데에  익숙할 뿐   다른 시도와 상상을 전혀 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갈매기 '조너던'은 무리를 벗어나 가장 높이,가장 빠른 비행을 시도합니다.............그는 쉬지 않습니다. 만족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의미하게 살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더 어려운 비행을 거듭 시도합니다.-70-

 

-익숙하다는 것은 심리적 부담이 적다는 미덕을 지니고 있습니다.처음가는 길은 언제나 멀게만 느껴지지만 되돌아 오는 길은 그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일 것입니다.-107-

 

-모레 보름에는 달빛이 다시 교교하게 흐드러지겠지요. 가산 이효석이 [메밀꽃 필 무렵]에서그려낸 경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제법 풋풋한 달빛 쏟아지는 밤이면 노천탕에서 알몸으로 그 달빛을 즐겨렵니다.-123-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DVD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즐기는 절박함이 아흔의 나이에도 멋진 저음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입니다. 무리하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고세월의 결을 따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 것인지 이 사람들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129-

 

-가을 단풍과 낙엽에서 나무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낙엽은 다가올 상황에 대한 나무의 지혜로운 대처입니다.겨울에 햇빛이 극도로 줄어드는 상황을 나무는 그렇게 준비하는 겁니다.그리고 떨어진 잎은 나무의 뿌리를 보호하고 영양분을 공급하지요.나무가 그렇게 하는 것은 다시 찾아올 삶을 가장 슬기롭게 기다리는 지혜입니다......한 번의 가을이 마지막 겨울로 마감된다는 예고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대비하는 준비 기간임을 깨닫습니다........나무는 잎을 떨구고 부족한 햇살에 대비하지 않고는 겨울을 나기 어렵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저 단풍도 사실은 해거름 지는 노을이 어둠을 예고하는 아름다움인 것처럼 다가올 겨울을 예고하는 나무의 노을이겠지요........제 몫을 다하면 여름내 자신이 그늘을 만들었던 그 자리에 떨어져 서리와 눈으로부터 제 뿌리를 보듬고 덮어주겠지요. 내년 봄 다시 돋아날 자신의 새 잎을 위해.-150-

 

-곱게 늙는다는 건  무엇보다 함께 살아온 이에 대한 푸근한 배려와 존경이 없으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젊은 시절의 격정적 사랑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겠지만   그 빈자리를 채우는  또 다른 사랑은 쑥부쟁이 꽃처럼 은은하고 오래갑니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온 삶의 매듭들이 올올이  어우러진 역사일 겁니다. 그 분들이라고 어찌 갈등과 미움과 다툼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큰게 사랑이고 존경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그리고 더 강하게 이겨냈을 겁니다.-181-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언제 읽어도 새상사는 사람들의 진면목을 항상 새롭고 놀랍게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을 줍니다.........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으면 시간의 침잠과 삶의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다........책은 정신의 양식일 뿐 아니라 자신을 비춰보는 영혼의 거울입니다.  같은 책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다시 읽어 보았을  때의 그 낯익음과 낯섦의 이중주는 이전에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나를 되돌아보고  변한 내 모습을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탄탄히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188-

 

-제주도 산굼부리에서 되돌아나와 성읍 쪽으로 갈라지는 길목에 늘어선 삼나무 숲은 결코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갈 때마다 꼭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그 길을 걸어봅니다.  숲은 누구든지 저절로 사색가로 만드는 모양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놀란 듯  뛰어가는 산짐승들 하나하나가 모두 나와 자연을 하나로 묶는 고리가 되어, 이고 지고 끌고 온 생각을 모두 덜어내고  넉넉한 가슴을 안고 가게 만듬니다...... 지금도 그 숲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턱까지  파고 든 은근한 짜릿함으로 행복합니다.-196-

 

-지금은 새벽4시. 집안은 조용하고 길 건너 24시간 편의점만 불을 밝힌 채 열려 있습니다.......겨울이라 어스름 여명의 전령도 오려면 아직 멀었습니다.-209-

 

-삼여지공三餘之功이란 말이 있습니다.  삼여란 독서삼여라 하여 책읽기에 가장 좋은 세 가지의  여유 시간이란 뜻이지요.  그 세 가지란 한겨울과 깊은 밤, 그리고 오래 내리는 궂은비를 뜻하는 陰雨를 말합니다........계절에 상관없이 책 읽기에 가장 좋은 시간으로는  깊은 밤만한 게 없습니다..........책 읽는 것은 제 발로 숲을 거닐고온 것 같은 충만함을 늘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요즘(의) 책도 읽고  옛 책도 읽다보면  시간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타임캡술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 장소의 막힘도 없어니 이보다 더 멋진 일도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겨울 밤은 그래서 행복합니다. 한 해를 마감할 때가 되어선지 요즘은 '법구경' 한 대목씩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나름대로 즐겁습니다.  마치 잘 숙성된 코냑 한 잔 입에 머금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향을 즐기는 것과도 같습니다.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기쁜 일도 있었고,  부끄러움 씻겨지지 않는 일도 많았습니다  새해는 다시 스스로 다잡아 좋은 일 열심히 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책은 그런 저에게 행복한 자양이 되어서 고맙고 소중합니다. 요란하게 한 해를 마감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책을 읽으며 정리하는 것도 좋겠습니다.-210-

 

- 겨우 반쯤 남은 잎들이 악착같이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걸 보고서야 창밖에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압니다.고작 이 유리창 하나의 간격이 밖이 추운지 따뜻한지 알 수 없게 만듭니다. 그저 가을이니 선선한 바람이 불겠거니,나들이 하기에 딱 좋은 날싸려니 가늠만  할뿐 정작 얼만큼의 바람이 부는지, 온도는  어떤지 알지 못합니다. -224-

 

- 가을은 제 나름의  시간에 대한 성실한 실천이다.  그저 결실을 맺는 계절이어서가 아니라 다 내주고 불필요한 군더더기 덜어내며 다시 세상에 드러낼 싹을 품고 모진 추위를 견뎌낼 준비를 하는 절기임을 늦게 나마 알게 되었다. -226-

 

- 영광에 있는 불갑사.

이 땅에 가장 먼저 불교를 전해준 인도승 마라난타가 벡제 침류왕 때 지은,  이 나라 불교의 뿌리가 디는 도량이어서 역사적 가치가 잇는 곳이다. 이곳에 꽃무릇이 무더기로 피어 장관을 이룬다.

꽃무릇과 상사화는 같은 백합과에 속하면서도 다른  꽃입니다. 상사화는 6월에 피고 꽃색깔도 분홍빛이지만, 석산이라 부르는 꽃무릇은 9,10월에 피는 붉은 꽃입니다. 그러나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공통점 때문이 인지 그곳 사람들은 두 꽃을 같은 이름으로 '의도적으로 혼동하여'  부르는 모양입니다.  상사화相思花,  꽃과 잎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늘 엇갈리는 꽃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대개 꽃들은 봄과 여름에 피는데 반해 이 꽃은 9월 중순에서 하순에 걸쳐 핍니다. 앙상한 ㄴ꽃대 위에 금방이라도 눈 멀게 할 것만 같은 붉은 꽃의 군무는 정말 시리도록  아름답습니다.  그 쏯들이 무더기로 피어 잇는 곳이 바로 이 절집과 그 뒤 저수지와 불영대 주변까지 이어진 군락지입니다. 특히 숲 아래 무리지어 핀 꽃무릇의 아름다움은 여느 꽃의 그것과는 다른 감동을 줍니다. 상사화, 이 꽃을 보고 나면, 힘겹고 버거운 삶 속에서도 소박한 위로르 ㄹ받을 수 잇어서 각별합니다. -233~235-

 

- 손돌바람, 음력 시월 스무 날쯤부터 부는 몹시 추운  바람을 옛 어른들은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옛날이난 지금이나 그렇게 빛에 대한, 새 날에 대한 기대와 몸 사림은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 손돌바람 불 때쯤 된면 이제 지루한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옛 어른들은 그 겨울의 한복판에서 오히려 새 봄의 시작을 보았던 겁니다. 날싸야 여전히 춥고 앞으로 더 매섭게 다그치겠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뼘씩 길어지는 햇빛의 자람은 그 혹독한 겨울을 견뎌낼 수 있는 바람과 여유를 갖게 해줄 겁니다. 어둠이 가장 짙을 때가 새벽의 시작이다 라는 지혜가 없다면 사람들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ㄴ다. ........................힘들고 버거운 삶 속에서 좌절과 절망을 맛보는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라는 걸 새삼 새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236~238-

 

-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도 하루하루 반복되고 이어지는 계절의 변칙에 어느덧 익숙해지는 것처럼 우리네 삶도 어쩌면 그렇게 어설픈 익숙함 속에서 스스로를 놓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겟습니다.  계절의 커다란 시간 속에서 오늘 하루를 보지 못하고 그저 어저ㅔ와 비슷하게 이어지는 오늘을 느낄 뿐입니다. 잠깐의 변칙과 일탈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제자리를 잡아가는 자연을 보면서도 제 삶의 타성은 모르고 살고 있다는 부끄러움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나무가 단단한 목질을 품게 되는 건 어김없이 찾아오는 힘겨운 계절을 겪으며 만들어지는 거라지요. 그 인고의 시간 동안 일찌감치 불필요한 낭비를 막기 위해 푸짐하던 잎들을 스스로 털어낸 나무의 지혜를 보지 못하는 우리는 모자라도 많이 모자랍니다. 어떤 시인은 '이 지구는 제비꽃에게는 하나의 화분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재화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그걸 얻으려 아등바등 애쓰며 사는데, 시인은 그게 그저 화분에 불과할 뿐이라며,정작 그 화분이 피어낸 제비꽃은 보지 못하느 우리를 무안하게 만듭니다. 자연에게는그처럼 배울 게 너무 많습니다. .................꽃을 피울 때와 접을 때를,경주하듯 키를 키울 때와 마치 죽은 듯 안으로 단단하게 조이는 때를 조금씩은 느끼고 알면서 살아가면,제 삶도 제비꽃 키우는 화분일 수 잇ㅆ겠다 싶습니다. 시간은, 자연은 예고했지만 우리는 애써 무시하고 그저 어제와 똑같은 오늘만 짐작하며 살았습니다. 익숙해지는 건 스스로를 잊는 것임을 초급행으로 도착한 겨울은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그 눈바람이 마냥 차갑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성숙하게 다지는 겨울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봄은 또 그렇게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240~241-

 

 

- 가지 않은 길   -  프로스트

노란 숲 속 두 가래 길.

두 길 다 가지 못하는 것 못내 안타까워

한참을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만큼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잉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거기엔 풀잉 더 잇고 사람이 걸어간 자취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 걷게 되어,어차피 그 길도 거의 같아지겠지만

그날 두 길엔

낙엽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두었습니다.

...................................-248-

 

 

-....................-249-끝.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