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88 / 류성룡, 7년의 전쟁 - 이종수 지음

최해식 2015. 6. 9. 01:58

-150722 읽음.

 

-복사꽃이 피었다. 돌아온 첫봄, 옥연정사에 복사꽃이 피었다. 서애는 방문을 열어젖힌 채 마당가의 꽃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뭉클했다.

이처럼 눈부신  봄 햇살을 ,  그 아래 저 붉은 꽃잎을 한가로이 만난 것이 언제 일이었던가.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여러 날을 , 오직 그 꽃을 보기 위해 아침을 기다렸다.

작은 마당위로 따사로운  봄빛이 조용히 머무르는 중이엇다. 몇 걸음 되지도 않을  이 공간이 허물어진 내 마음을 지켜주는  벗이었으니.

봄빛이 유독 그 꽃을 사랑했음일까 꽃나무는 봄빛 속에 오롯이 향기로웠다. 그 화사함에 눈이 시려왔다. 담장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강줄기도, 그 너머의 고향 마을마저도 그저 먼 세상 같기만 했다.  그래도 계절만은 무심하지 않앗던 게다.

유난히 맑은 기운이었다. 바람이 스쳤다. 작은 꽃잎들잉 흩날리기도 했다. 봄이......한창이었던 것이다. 봄도,여름도, 가을도, 그리고 겨울마저도 잊고 지낸 것이 벌써 몇 해이던가. 계절은 여전히 제 일을 놓지 않앗으나 그 한 자락을 누릴 수 없었던 날들. 그래서 일까. 이 작은 기쁨을 잠시라도 붙들어두고픈  마음이엇다. 짧은 봄이 아쉬웠다. 아무 근심 없는  사람마냥 그렇게 복사꽃에 묻혀 하루를 ,또 하루를 지내고 잇었다. -13-

 

 

- 형 류운룡과 류성룡은 남달리 우애가 돈독한 형제였다. 바쁜 동생을 배려하여 항시 집안의 모든 일을 대신해준 형님. 재상의 자리에 선 동생에게 누가 될까 선비로서의 몸가짐을 돌아 보고  또 돌아보며 살아온 분이엇다. 작은 벼슬자리를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고 학문에 정진해온 형님에게 , 이제 자식들까지 거두어 달라 했다.  죄스러웠다.

4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막내아들 진이의 나이는 일곱 살.유독 자신을 많이 닮았었다. 이제 열한 살 된 막내아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겁내느 기색 따윈 내비치지 않았다. 형들을 따라 말없이 절을 하며 얼마가 될지 모르는 이별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라의 일이 무거워진 이 몇 해 동안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주고 잇었던 것이다. 류진(1582~1635) ; 류성룡의 막내아들.  임진왜란 당시의 피난 상황을  생생하게 기술한 [임진록] 을 남겼다. -64-

 

 

- 1592.4.30일, 분주했던 하루도 지쳐 저물기 시작했다. 이제 내일이면 계절도 여름으로 들어서는가.   서울을 떠난 임금의 행렬은 이 여름이

지나기 전에 다시 도성으로 돌아올 수는 있으려는지.

기어이 해는 기울어 어둠이 짙어져갔다. -68-

 

 

- 1590년 조선에서 일본으로 통신사가 파견되었다.

성종10년(1479)의 통신사 파견 이후 무려 111년 만의 일이었다. 사신단은 1590.3.6일 서울을 출발하여 1591.3.1일에 복명하였다. -70-

 

- 젊은 시절이란  늘 이처럼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류성룡은 젊은 관료로 푸르던 시절이 떠올랐다.

독서당에서 사가독서의 은혜를 입었던 것이다.

한강변 고요한 풍광 속에 독서당이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었지. 글을 읽기에, 사색을 누리기에 맞춤한 곳이엇다.  그 독서당 옆 작은 언덕에 앉아 저 멀리 서편으로 기울어지는 해를 바라보곤 했다.

가을바람으로 더 깊어진 그 강물은 또 어떠한가. 하루의 오고 감도,계절의 흘러감도.....모두가 아름다웠다. 그렇게 순리에 따라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 가지런한 평온함이 좋았다. 글을  읽고 강변을 걷거나,혹 오래도록 저녁이 다가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 다시 작은 불을 밝히고 글을 읽으며 긴 밤을 홀로 충만했엇다. -87-

 

- 가을 바다는 고요했다. 전투가,큰 전투가 끝난 뒤의 바다는 무심한 듯 고요하기만 했다. 붉게 물든 바다는 이내 그 상처를 감추고 여느 때의 푸름으로 돌아갔다. 물결마저 알고 있음일까. 출렁이며 울지도 않았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탓할 것이다. 바람이 불어 흐느끼는 것이라,바다는 생각할 것이다. 몇 달 동안의 전투에 시달렸으니 바다 또한 잠시 숨이라도 고르고 싶엇을 것이다. -131-

 

 

- 가을이 올  무렵이면,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상념에 젖곤 했다.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그 생명의 이치를 되새기게 되는, 천천히 서늘해지는 이 계절의  느낌이 좋았다.  이 가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햇살도,들판도,생명의 이치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달라진 것은 사람의 일,그것 뿐이었다. -146-

 

- 1593.3월, 어느새 계절은 봄이 한창이었으나 그저 계절이 그러했을 뿐이다.  따스한 봄 햇살 아래,굶주림에 지쳐 차갑게 식어가는 이들이  늘어갔다. 이여송이 머뭇거리는 그 하루가, 누군가에겐 죽음으로 들어선 그 하루인 것이다. -190-

 

차마 바로 볼 수 없었다. 기울어지는 해를,  그저 붉게 번지는 강물의 빛깔로 짐작하기로 했다. 지난 1년간 도성에도,왜군이 짓밟은 도성에도....해가 뜨고  또 이렇게 기울었을 것이다. 그저 여느 날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그랬을 것이다.   도성에 들어선 것은 희미한 햇살마저도 모두  잠겨버린 저녁 무렵이었다. -201-

 

 

- 제안이 만남으로, 만남이 의논으로, 그리고 그 의논이 언쟁으로 번지면서, 줄 것과 받을 것의 차이를 확인하고, 결국 돌아서고  다시 만나는, 그야말로 돌고 도는 회담이 계절이 바뀌도록 이어졌다.

하지만 싸우지 않는 군사도 먹어야 하루를 견딜 수 있는 법. 가을이 되면서 들판의 곡식을 두고,노략질하려는 왜군과 지키려는 조선 사이의 전투를 피할 수는 없었다. 대의나 영토를 위해서가 아닌, 그저 먹을 것 때문에 총을 들고 활을 들어야 했다. 어쩌면, 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전투일지도 모른다. -259-

 

- 후시미(伏見) 城 ;

1596.8.13일 교토는 물론 일본 전역이 흔들릴 만한 대지진으로 후시미성은 무너져 내렸다. 어느 성보다도 웅장하고 화려했던 ,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자신의 이름을 건 성이었다.

벚꽃 날리는 시절이라면 더 좋았을까. 아니,이대로도 충분했다. 짙고도 풍성한 계절이 한껏 치장한 성을 둘러싸고 있었으니,황제의 성이라 하여 이보다 더하겠는가. 늦여름의 후시미성은 오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두 나라 사신 앞에서 과시하고 싶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277- 

 

- 그날 밤, 그 두사람 ;

1597.4.1일, 날이 어둑해질 무렵, 이순신은 류성룡의 집이 있는 묵사동 쪽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이었다. 자신이 태어나 자라던 건천동과 이웃한 곳이었으니,그 목 어디쯤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튀어나올 것 같기도 했다. 지금처럼 저 뒤편, 남산이 봄으로 가득한 계절....푸른빛 출렁이던 그날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은 봄비가 어찌 이리도 스산한 것인가.

"오는 길은 여전했지만............여전하지가 않았습니다."

유년의 추억 같기야 하겠는가. 류성룡 또한 이순신을 기다리며 옛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300-

 

 

-  하루의 밤이 지나고 다시 하루의 새벽이 시작되는 시간까지.그렇게 마주 앉은 채였다. 떠나야 할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서울에 남아 영상의 자리에서, 한 사람은 먼 길을 떠나 백의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될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이 전쟁이 무사히 끝난다면, 다시 한 번 긴 새벽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서로 그런 생각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부디....살아남아 달라고.

"(1597.4.2) 날이 밝으면 바로 길을 떠날 것입니다. 평안하소서."

"공이야말로....부디 몸을 아끼시오."  -302-

 

[종일 비가 계속 내렸다. 어두워질 무렵 성으로 들어가 영의정과  이야기하다가 닭이 울어서야 헤어져 나왔다.] <난중일기 1597.4.2일 >-303-

 

 

- ................-374-끝.잘 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