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982/ 정조와 채제공, 그리고 정약용 - 박영규 지음

최해식 2023. 8. 3. 14:55

-정조,채제공,정약용을 18세기 르네상스의 트로이카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니다 -5-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의 근거는 이렇다.

경종은 병마에 시달리며 입맛을 잃었는데 세제 연잉군 금이 경종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게장을 올렸다.   경종은 그 게장을 맛 보고 입맛이 좋아져 조금씩 식사를 했고 이때 연잉군이 후식으로 생감을 올렸다.  사실 게장과 생감은 궁합이 맞지 않는 음식이라 함께 섭취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연잉군은 이를 무시하고고 생감을 올렸는데 그후 이틀쯤 지나자 경종이 갑자기 복통을 호소했다. 이에 연잉군은 인삼을 올렸고 그것을 몇 번 먹은 뒤 경종은 급사했다. -39-

 

-영조가 사망한 지 닷새 만인, 1776년 3월10일  정조는 즉위했다.

25살의 괄괄한 청년 정조는 그날 경희궁 자정전 문밖에 대신들을 모아놓고 일성으로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햇다. 궁궐 문밖에서 이런 글을 내린 것은 국상 중이었기 때문이다 -134-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은 결코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조의 뒷거래정치가  정치의 생명인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려 모든 권력을 왕이 독점하는 결과를 낳았으니 정치적 몰락은 필연적인 수순일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권력을 독점할 경우,  그 한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조정은 엉망이 되고 국가는 망국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연개소문이 왕을 대신해 고구려의 권력을 독점하다 죽은 뒤 고구려가 몰락한 사실도 이를 확인해준다.  정조의 죽음 이후 조선 조정이 외척의 손아귀에 놀아나며 몰락해간 사실 역시 이를 증명한다.  결국 밀찰을 바탕으로 한 정조의 뒷거래정치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337-

 

-잘 봤습니다. 끝.-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