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60/ 이순신의 조일전쟁-도현신 지음

최해식 2018. 12. 27. 16:56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조선 경상도 수군의 태도였다.

경상우수사 원균과 경상좌수사 박홍은 바다를 넘어 온 일본 함대를 향해 싸움 한 번 해보지 않고 약 70여 척의 판옥선과 협선들 및 화포들을  바다에 처넣어 버렸고, 1만여 명의 군사들까지 모두 해산시켜 도망가도록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31-


-전라좌수사로서 업무에 충실하던 이순신은 전쟁이 일어난 지 이틀 후인 4월15일, 경상우수사인 원균이 보낸 서신을 받았다.  그리고 원균의 서신이 오고 난 직후, 경상좌수사 박홍이 보낸 공문이 도착했다.  왜선 350여 척이 이미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했다는 다급한 전갈이었다.-40-


- "3년 동안 힘들게 군사를 기르는  까닭은  하루 전쟁에 쓰기 위해서다" 라는 중국의 고사를 떠올렸다. .....병마사 이각과 경상좌수사 박홍도 군사를 이끌고 동래 뒤쪽까지 갔지만, 왜군의 수가 너무나 많아 그만 돌아오고 말았다.는 내용도 전해졌다.-41-


- [난중일기]1592년4월29일자에서 이순신은 경상좌수사와 우수사 등의 장수들이 왜의 수군이 몰려오자 싸워 보지도 않고 귀중한 함대와 무기들을 몽땅 바다에 처넣고 도망가 버린  원균을  과연 좋게 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46-


- 조일전쟁 내내 일본군에 빌붙어 동포를 해치고 제 몸의 이득을 챙긴 반역자들은 무수히 많다. 이들은 왜 침략자를 도운 것일까?

우선 평소에 지배 계층들에게 핍박과 학대를 받다가 전쟁이 터지자 그동안 받았던 설움과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군에게 협력한 것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193-


- 1596년7월1일, 충청도 홍산에서 이몽학이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이 반란이 금세 많은 백성들에게 호응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2010년에 개봉한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바로 이 몽학의 난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198-


- 명군의 횡포는 조선의 체찰사 유성룡도 잡아다가 곤장 40대를 때리라고 했다. [징비록]에서 발췌.  ......... 조선의 고관들 중에 유성룡 말고도 명군의 횡포를 경험한 사람은 더 있다.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박진 장군은 명나라 하급 군관인 루승선에게 맞아 목숨을 잃기도 했다.-220-


- 1994년 작가 고정욱이 소설[원균 그리고 원균]에서 이순신에 의해 억울하게 간신이 되었고, 전쟁터에서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영웅이라고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1998년 작가 김탁환은 4권 짜리 [불멸]을 펴냈다. 이 책에서 이순신은  원균에게 맥을 못 추는 나약한 성품으로, 반대로  원균은 사내답고 호탕한 성품으로 묘사되었다.-234-


- 1597년9월16일 오전 11시,명량해협의 입구인 울돌목에서 海戰이 시작되었다. ......이순신은 장수와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살 것이요,  살기를 바라고 싸우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한 사람이 막고 지키면 능히 천 사람을 당해 낼 수 도 있다.    바로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고 여기가 그런 곳이다."-282-


-.........-346-끝.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