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57.사기열전 / 동양고전 연구회 편

최해식 2014. 9. 6. 00:06

-"군자란 세상을 마친 후에도 이름이 칭송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자이다.  백이 . 숙제도 이와 다름이 없다. "

漢의 가자賈子는 탐욕한 사람은 재물에 목숨을 걸고,  의열한 사람은 명예에 목숨을 걸며,  권세욕이 강한 사람은 그것에 끌려 죽고, 범용한 사람은 제 생명이나 탐하고 아낄 뿐이라고 했다. 

같은 종류의 광명은 서로 비춰주며 같은 종류의 만물을 서로 구하고,  구름은 용을 따라 용솟음치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 곧바로 일어난다. 

이는 성인이 나타나면 만인이 우러러보는 것처럼 백이 . 숙제가 현인이긴 하지만 비로소 공자의 칭송을 얻음으로써 그 이름이 드러난 것이다. [백이 .숙제열전] -12-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했다가는 절조와 견식이 낮고 천박한  인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반대로 큰 이익을 탐하는 자에게 명성을 높이도록 설들했다가 세상 물정에 어둔 자라며 멀어질 것이다.  속으로는 후한 이득을 얻고자 바라면서도 겉으로는 높은 명성을 원하는 척하는 자에게 높은 명성을 설득하면 받아들이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멀리하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하면 가만히 그 내용을 속으로만 챙긴 뒤 그 사람을 버린다.  [노자 . 한비자열전] -30-

 

-齊의 손자 (손무
)는 오왕 합려와  만나 손자의 병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무의 병법 시험무대를 보고난)   오왕 합려는 손무를 대장군으로 등용했다.

손무가 죽은 후 백여 년이 지나 손빈孫賓,이 나타났다,  그는 방연과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위의 혜왕을 섬겨 장군이 되었다.

.........   본디 조 . 위 . 한, 세 나라는 춘추시대의 晉나라가 나뉘어 생긴 같은 뿌리의 나라 였기에 시기하는 마음도 강했다. [손자  . 오기열전] -47~ 52-

 

-정나라와 진晉나라는 본래 주나라 이래의 옛 국가였다.  진은 뒤에 韓 . 魏 . 趙의 세 나라로 분열괴어 三晉이라 한다.

........   오왕 합려는 월왕 구천에게 기습을 받아 결국은 죽었다.  이어 합려의 아글 부차는 왕이 되자 아버비의 복수를 결위하고 그 戰意를  잊지 않기 위해 섶 위에서 잠을 자고 [臥薪] 신하들로 하여금 자기 방을 드나들 때마다,  ' 부차여, 월왕 구천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라고 소리치게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부차는 월나라의 항복을 받았다. 

그후 구천은 오나라에  복수하기 위하여 자신을 엄격하게 다루었다.  밤에고 잠을 자지 않고 절치부심했다.  잠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고 겨울에 발이 시리면 오히려 찬물에다 발을 담그고 자신을 꾸짖었다.  겨울이면 방에 얼음을 갖다놓고  여름이면 화로를 끼고 지난날의 치욕을 곱씹었다.  뿐만 아니라 방에 곰쓸개를 매달아 놓고 드나들 때마다 쓰디 쓴 쓸개를 핥았다[嘗膽]

와신은 오나라 왕 부차가 마른 짚을 깔고 잔 데서 유래했고 상담은 월왕 구천이 쓸게를 핥았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오늘날 와신상담은 치욕을 씻기 위해 온갖 고통을 참고 견딘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때 오자서가 나서서 간했다.  " 월왕 구천은 일시 곤고하여 굽히는 것이니 그를 살려둬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지금 월을 멸망시키지 않으면 후일 후회할 것이 자명합니다. "

이미 재상 '백비' 가 왕을 충분히 설득했기 때문에 오 왕은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았다. 

뒤에 " 아아, 오자서의 말이 옳았구나! " 하고 부차는 뒤늦게 후회한다.  월나라 구천은 오나라의 도성을 습격하여 오군을 몰살시키고 오왕 부차를 목베어 죽였다. [오자서 열전] -76~ 91-

 

-상앙商怏이 秦나라 효공에게 말했다.

확신이 없는 행위에는 공명이 따르지 않고 확신이 없는 사업에는 성공도 없습닏.  본시 남보다 뛰어난 행위를 하면 원래가 세상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탁견을 가진 자는 반드시 오만하다는 소리도 듣게 됩니다.  어리석은 자는 일의 성과에 대해서 어둡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 성과를 미리 압니다.  .......    지고한 덕을 논하는 자는 솔선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성과를 이루는 자는 범인凡人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적어도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옛법을 모범으로 삼지 않으며 적으나마 백성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구태여 구례舊禮를 쫓지 않는 법입니다.

진 효공은 앙을 좌서장으로 삼고 변법變法의 令을 확정케 했다. 

법령은 마련되었지만 앙은 아직 공포하지 않았다.  법령을 믿지 않을까 걱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앙은 묘안을 짜냈다.  18자 나 되는 나무를 도성 저잣거리 남문에다 세워놓고 ' 이것을 옮겨 북문에다 세우는 자에겐는 10금을 주다 ' 라고 고시를 했다.

앙은  ' 나라는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 ' 는 사실을 분명히 했고  그런 후에야  새 법령을 반포했다.  .........    그언 후 5년이 지나자 진나라는 부강해 졌다. 

" 상군의 법에는 여권이 없는 사람을 투숙시키면 연좌의 벌을 받게 됩니다."  상앙은 자기가 만든 법에  자기가 걸려들었다.  그리고는 붙잡혀 모반의  죄로 거열형에 처하여 조리 돌림을 당했다.  [상군 . 상앙열전 ] -114~ 119-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유능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자연히 그 존재가 드러나게 됨의 비유.   [평원군 . 우경열전] -166-

 

-君  ;  유능한 선비들을 앞다투어 빈객으로 맞아 그들의 힘으로 국력을 신장시키고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초나라 = 춘신군

제나리 = 맹상군

조나라 = 평원군

위나라 = 신릉군  있다.

 

" 선비는 은혜 갚는다 했습니다."....

"결단해야 할 일ㅇ르 결단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입는다 " 는 옛말이 맞다. [춘신군 열전] -183~ 190-

 

-범수는 위의 재상 위제 에게서 모욕을 참고 견디며 강한 秦나라의 재상이 되어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말년에 그는 현인 채택을 추천하여 그에게 지위를 양보하였다.  [범수 , 채택열전] -191-

 

-채택이 연나라에서 진나라로 왔다.  채택은 진秦나라에 와서 재상 범수를 욕하고 다녔다. ......

무릇 계절에는 봄. 여름. 가을 . 겨울 사계절이 있고 그 계절은 어쩔 수 없이 바뀌어 갑니다.  마치 그 계절이 자신이 이룬 功의 임무를 끝내고 바뀌어 가듯이 말 입니다. ...........

'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달도 차면 기운다. '  는 옛말도  잇습니다.  만물이 왕성했다 쇠퇴하는 것은 천지간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이 그 시대의 사정에 ㄸ라 변하는  것이 바로 聖人의 변치 않는 도리입니다.   그래서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은퇴해야 합니다. "  [ 범수 . 채택열전] -208-

 

-염파 장군은  사시나무 회초리를 한 짐 지고  상경 인상여 의 문전에 이르러 웃통을 벗고 사죄해 아뢰었다 [ 부형청죄負荊請罪,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매질해 줄 것을 청하는 죄 ] .............

그로 인해  두 사람의 우의가 통하여  ' 목이 잘려도 피하지 않을 정도의 막역한 지기' 문경(刎頸)의 교交 를 맺었다. [염파. 인상여열전] -221-

 

-말탄 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말을 거꾸러뜨리는 것이 신속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장사하는 법이나 전쟁하는 법이나 이치는 한가지였다.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세상에 오래도록 남길 수 있는 것은 글(文)뿐이었다.   이백삼십 년 전에 죽은 공자이건만 공자는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  글이다.  그의 말이 글로  되어 있는 까닭이다.  [여불위열전] -227~ 262-

 

-지백의 가신인 예양도 온전할 수가 없었으므로 산중으로 도망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탄식했다.

" 아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여 화장한다.  지백은 나를 알아 주었으니 반드시 나는 지백의 원수를 갚고 죽겠다.,  .........

 

백정 섭정은 한나라 재상 겹루를 살해한  후 스스로 자결했다.  

엄중자는 섭정의 인물됨을 통찰하여 곤궁하고 오욕스런 환경에 살고 있는 데도 개의치 않고 교제해 주셨으니 그 은택이 도타웠다.  "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고 하지 않던가요. "

결국 엄중자는 사람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 그런 용사의 마음을 잘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 후 220여 년이 지나 秦에서는 형가의 사건이 일어났다.  형가는 위衞나라 출신이다.  [자격열전] -279~ 290-

 

-광무군 이좌거가 한신에게 말했다

" 아무리 슬기로운 사람도 일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은 실수가 있고 (천려일실千慮一失),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일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음(천려일득千慮一得)  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

괴통이 한신에게 말했다.   " 천하가 어지러웠던 당초에는 영웅호걸들이 다투어 왕이라 칭했으며  그들이 한 번 부르자 천하의 인사들이 구름과 안개 몰리듯 모여들었다.  이는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겹겹이 겹쳐왔고 불길이 바람같이 일어났습니다.    [한신 . 회음후열전] -335~ 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