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44.완역 사기 본기1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최해식 2014. 8. 13. 01:33

-<사기>는 인간학의 교과서 이다.

인간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한다.

마음을 열고,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내서, 차분히 읽어나가면 개인과 사회에 도움을 주는 무한 가치의 보물을 찿아낼 수 잇다.  또 인간답고 존엄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도 실감할 수 있다. 사마천과 <사기>는 우리를 보다 나은 인간으로 이끄는 둘도 없는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37-

-보임안서報任安書   : 임안에게 드리는 답장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47-

-새상이 달라지고 시대가 바뀌면 모든 일이 꼭 같아야 학 필요는 없다.  그래서 ' 지나친 근검절약은 따르기 어렵다' 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생산의 근본을 강조하고 비용을 절약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가정을 풍족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는 묵가의 장점으로 어떤 학파라도 없애서는 안 된다. -113-

-인간의 삶은 정신에 의탁하며, 정신은 육신에 의탁한다.  정신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고갈되고, 육신을 너무 혹사하면 병이 난다...........  때문에 성인은 정신과 육체를 모두 중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신은 생명의 근본이요, 육체는 생명의 기초다.  정신과 육체를 편안하게 만들어 놓지도 않고  ' 내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 고 하니 대체 무엇을 믿고 큰소리를 치는 것인가? -115-

-효도란 어버이를 섬기는 것에서 시작하여 군주를 섬기는 것을 거쳐 입신양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효도니라.  세상이 주공을 칭송하는 것은 그가 문왕무왕의 덕을 노래하고, 자신과 소공의 기풍을 선양하고, 태왕왕계의 사상을 드러냄으로써 공유에 미치고 나아가서는  후직까지 받들었기 때문이다.

주공; 무왕의 동생

문왕; 서백 창.으로 무왕의 아버지.

무왕; 주 왕조 창건 함

소공; 주공의 동생

태왕; 문왕의 조부.  고공단보를 가리킴.

왕계; 태왕의 아들.  문왕의 아버지 .  이름은 계력.이다.

공유; 하나라 사람으로 주.의 먼 선조임.

후직; 요순시대 사람으로  주.의 시조임.  농업을 발전시킨 공로로 후직에 임명됨.-117-

-사마천의 학문하는 태도;

好學深思, 心知其意호학심사, 심지기의

즐겨 배우고 싶이 생각하여 마음으로 그 뜻을 알다.-233

-한 무제 유철은 당시 한나라의 국력은 최강으로,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희생당하였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멸망이라는 아픈 기억이다.-254-상商나라 (은殷나라) :

기원전 1600년에서 1046년까지 약 550년이다.

'탕' 이 '박' 에 도읍하여  20대王 ' 반경 ' 이 은殷( 하남성 안양 은허)로 도읍을 옮겼다.

은허 '갑골문'의 발견으로 殷의 역사는 보다 충실해지고 있다.-309-

-防民之口 甚於防水방민지구 심어방수  :

백성의 입을 막는 일은 물을 막는 일보다 심각합니다.  막힌 물이 터지면 피해가 엄청난 것처럼 백성들 또한 같습니다.  따라소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길을 터주고 ,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말을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백성의 입을 막느 일은 물을 막는 일보다 심각합니다.'  백성의 입을 막으려다 더 큰 위험을 맞이한다는 소공의 경고이다.  통치자는 민심과 여론에 늘 귀와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여론과 민심의 관계에 대한 소공의 논의는 명문으로서 손색이 없다.  10대 '여왕' 은 이런 '소공' 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은 국인國人의 反正으로 쫓겨난. -406-

-西周시대

무왕의 건국부터 12대 유왕까지이다.

유왕은 포사를 웃기기 위하여 기상천외한 봉화놀이까지 동원하는 등 실정을  거듭하여'신후'와 결탁한 '견융'의침공에 피살당하여  이로써 周는 멸망하였다.  역사는 이때까지를 서주라 부른다.

東周시대 :

기원전 770년 부터를 동주라 부른다

동주는 다시 춘추와 전국으로 구분된다.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우면서 화려했던 '춘추전국시대' 가 개막된다.

13대 평왕은 도읍을 동쪽 낙읍으로 옮긴다.  동주의 시작이다.

이로부터 왕실의권위는 쇠하고 막강한 제후들이 패주로 군림하여  濟   환공을 시작으로 패주가 등장하여 이를 " 춘추오패 "라 부른다. ..........

동주 37대 '난왕'은 기원전 249년 秦 장양왕에게 멸망당함으로써 800년 가까운 周왕실은 막을 내렸다.-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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