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855/ 영어 조선을 깨우다 2- 김영철 지음

최해식 2019. 11. 20. 21:00

-1883년 보빙사 일행이 외교사절로  미국을 첫 방문했다.

1887년 11월12일 주미 친권공사 박정양 일행은 미국을 향해 출발했다. 조선외교사절이 미국 땅을 밟기는 두 번째였다. 이들을 워싱턴까지 안내할 총책이 외국인 참찬관 알렌으로 모두 11명으로 초대 주미공사관 일행이 구성됐다.  알렌은 이들 중 이하영과 이완용은 좋은 인상을 풍겼고, 박정양은 천치바보 같은 사람,  이상재는 더러운 사람,  강진희는 지분거리는 사람, 이채연은 번역관임에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었다 라고 평했다. -16-


-이하영, 그는 부산 거리에서 찹쌀떡 행상을 하면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서 미국공사관에서 근무하던 알렌 박사의 요리사로 일했다. 그런 다음 외부대신에 올랐고, 子爵자작으로 생을 마감했다. 라고 윤치호의 일기에 기록이 남아있다. ......알렌의 요리사였든 가정교사였던, 어쨌든 이하영은 알렌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실전 영어를 익힌 것은 분명하다. -25-


외국어라는 게 하나를 깨우치면 다른 것도 쉽게 능숙해 지는 법이다. 일본어에 능숙한 이하영은 알렌을 만난 뒤, 다시 영어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일상영어를 체득, 제중원 주사를 거쳐 알렌과 함께 조정에 출입할 수 있는 관직에 올랐고, 영어구사 능력으로 주미공사관 서기관에 임명되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27-


-1896년2월11일 아관파천이 이루어지자,고종은 즉각 친일 내각 대신들에대한  捕殺令포살령을 내렸다.    친일내각들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친일 내각이 붕괴되면서 친미파,영어파 인사들은 다시 내각의요직에 기용됐다.  이 내각 구성에서도 알렌은 친미파들을 등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햇다.  물론  알렌이 자신의 오랜 친구들을 권력의 전면에 나설 수 잇게 추천한 것은 각종 경제적 이권의 미국 양여를 쉽게 하려는 의도도 컸다.  아관파천을 전후해 미국은 운산금광 채굴권과 경인철도 부설권 등 황금알을 낳는 이권을 챙겨갔다. 러시아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이권쟁탈전에 뛰어들었고, 조선은 열강들의 이권 사냥터로 전락했다.  알렌은 "이권추구자들이 지금 조선인의 이부자리 속에 있는 벼룩처럼 잔뜩 모여들고 있다" 고 이야기할 정도로  각 열강을 등에 입은 이권추구자들이 들끓었다. -57-


-권력 주변에 있던 통역이 갑자기 출세한 것은 러시아어 통역한 김홍륙만이 아니엇다. 700년 전 고려시대 원의 간섭시절에도 몽골어에 능통한 인물이 역시 벼락출세를 한 바 있다. 원의 침공 이후 충렬왕을 시작으로 고려의 왕들이 원나라황실의 부마가 되면서, 몽골어 통역관의 수요가 급증했다. 평양의 미미한 가문에서 태어났던 조인규는 몽골어 수요에 대비한 통역관양성 인원에 선발되어, 충렬왕이 세자로 베이징에 갈 때 수행하면서 측근이 됐다. 세자가 원나라 공주와 결혼해 돌아와 왕에 즉위한 뒤 승승장구했다. -60-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일반인의 욕망을 부채질 한 것은 아무래도 어학으로 갑자기 입신출세한 인물들의 성공담일 것이다.  '찹쌀떡 장사' 이하영이 왕실에 들어가 회계원장을 맡고,  주일 전권공사로 출국하는 모습이나, 김홍륙이 역시 고종의 지근거리에 있는 비서원승을 거쳐 한성판윤에 오르는 모습 등이다. 영어를 익힌 사람이 나오기 시작한지 불과 10여년 만에,그 영어를 바탕으로 권력의 심장부에 오르고, 정부기구의 실무 관리자가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75-


-소설가 복거일은 1998년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라는 ㅊ 책을 출판, 탈민족주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세계화 시대에 대비해 잠정적으로 영어를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삼은 후 궁극적으로 모국어로 삼아야 한다" 는 영어공용화르 주장햇다. -318-


-영어사용자가 이 땅에 첫 출현(1797년 )한 뒤 85년이 지나 처음으로 영어를 배운 사람이 나타났고(1882 ), 최고통치권자의 호의 아래 영어의 씨가 한반도에 뿌려졌다.(1883~1886)  그 후 120여 년 동안 부침을 겪으면서도 영어는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제 1외국어의 지위르 유지해 왓다.  특히 영어는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변별도구'로 80여년 넘게 사용되면서, '시험영어' 라는 외국어의 용도와는 전혀 무관한 영역을 비대하게 키웠다. 그 후유증으로 "10년 이상 배우고도 말을 못하는 " 벙어리 영어 문제를 낳앗고, 이는 교육문제에서 나아가 사회문제,정치문제로 진화하면서 급기야 통제불능의 '거대한 괴물' 이 되엉버린 게 영어의 현재 모습이다. -331-


-........-331-끝.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