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87/고운 최치원, 나루에 서다 - 김은미,김영우 지음

최해식 2018. 4. 15. 16:36

- 임경대에서 최치원 선생님의 발자취를 볼 수가 있어 행운이다.

-최치원의 아버지 최견일은  통일신라에서 육두품이었다고 한다. 경주 사량부 사람이었다.-26-


- 최치원이 당나라에 유학하던 당대에는 온갖 나라 사람들이 장안으로 모여들엇고, 거기에는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도 있었다. 당나라  정부는 그들을 국자감에서 공부하게 지원했고 숙소와 식사를 제공받은 외국인 유학생은 8,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당나라는 그렇게 자신을 세계의 문화국으로 자임하면서 개방 정책을 폈다. 최치원은 그런 개방 정책의 수혜자 중 한 사람이엇다. -43-


- 당나라 생활 17년째 최치원은 암중모색 끝에 신라 귀국을 결심한다. -79-


- '인백기천'은 [중용]에 나오는 말인데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지낼 때 남들이 백을 하면 자기는 천을 했다.고  그 정도로 열심히 해서 자기가 당나라에서 성공한 거라고,  귀국한 후에 신라 왕에게 올리는 책에서    그 이야기를 했대요. -89-


-쌍계사로 가는 19번 국도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이라는 이름을 따로  얻을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길이다.  세월을 말해 주는 커다란 옹이들을 여러 개씩 매단 둥치 굵은 나무들이 지혜 가득한 현자같은 고요한 모습으로 이어져 있는 길. 그 길을 따라 오래된 나무 사이로 조심스레 차를 달리는 것도 가슴 벅차지만, 옆으로 흐르며 그 길을 따라오는 지리산 계곡의 힘차고 맑은 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갈해진다. -151-


-해인사 가는 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더러움을 씻는 듯한 기분이 드는 길이다. 그 긴 길을 나의 두 다리로 걸어 올라갈 때는 말할 것도 없다.  맑은 물이 하얀 바위 위를 흐르는 홍류동 계곡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세상의 때가  한 겹씩 한 겹씩 서서히  벗겨지는  느낌을 받게 되고, 해인사의 일주문을 들어설 무렵이면 이미 마음이 상당 부분 정화된 기분에 젖게 된다. -178-


-  홍류동 계곡 다리 ;

박물관 앞에서 절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다가 계곡을 넘는다리 위에 서는 바로 그 순간, 조금 전까지의 고즈넉함은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순식간에 교체된다.  조금 전까지 들여오던 산새 소리라든가 윙윙대는 벌의 날갯짓 소리는 순간적으로 계곡 물소리에 덮여 사라지고, 나는 갑자기 계곡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해인사에 갈 때마다, 홍류동 계곡의 작은 다리에 설 때마다, 나는 매번 그런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세상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비 소리를 물소리로 덮는다는 거지. 以夷制夷가 아니라 以聲制聲, 소리로 소리를 제압한다랄까"

나는 홍류동 계곡을 넘는 그 작은 다리에서 이 시를 경험했어.

최치원의 시 [제가야산독서당]을 보여 주었다. -179-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초여름 산사에 내리는 비는 절의 지붕을 타고 흘러, 처마 끝 절 마당에 한 줄로 동심원 여러 개를 만들고 있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 시간을 확인하려다가 그만뒀다. 현준이도 나도 잠시 세상을 잊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해인사는 그런 절이니까. -193-


-...........-194-끝. 잘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