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33 /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2 - 박상하 지음

최해식 2016. 3. 6. 17:46

-0306대출받음. 0313읽음.

- 전쟁이 소강 상태에 빠져들면서 겨우 한숨으 돌리게 된 조정은 그러나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토적 무리의 난동으로 연일 골머리를 썩고 있어서 정기룡 장군을 갑오년(1594년) 여름에 상주 목사 겸 토포사로 임명하였다. -38-

 

- 1597년 정유년 한 해 동안만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구원군이 모두 8만여 명에 달하면서, 조선은 다시 한 번 피비린내 나는 전화 속으로 휩싸여 들어갔다. -47-

 

-멀리서 동이 빼주룩이 터오고 있었다.-54-

 

 

- "지혜로운 자는 생각을  바꿀 줄 안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렇지 못하다." -85-

 

- 파죽지세 破竹之勢, 곧 대쪽이 쫙하고 일순간 갈라지는 것이다.-95-

 

- "바람 부는 강변에 학이 머물지 않는다. 네가 생각하기에 옳지 않은 것이라면  가지 않도록 하여라." -229-

 

- 역사에 가정따위는 없다지만, 만일 이순신, 그가 아니었더라면 일본군의 필승 전략은 그대로 적중했을는지도 모른다. 일본군은 남해와 서해 바다를 거침없잉 돌아 군수 지원품을 실은 전함들잉 대동강의 평양성까지 곧바로 올라갔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을 땐 '고니시 유기나가' 가 언제까지나 평양성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명나라 대륙까지는 모르돠, 적어도 선조가 파천해 있는 국경의 의주까지는 밀고 올라갔을 것이 분명하다. -260-

 

-...............-302-끝.잘 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