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記術) 어디에도있고 어디에도 없는 - 김영하 소설집
....로마에 도착하여 좁고 더러운 호텔에서 하루를 묵는다. 로마는 아무래도 정이 들지 않는 도시다. 다음날 아침 나폴리까지 기차로 두 시간. 첫인상은 지저분하다. 그곳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폼페이까지 간다. 4월 , 이탈리아 남부는 여름이다. 덥고 건조하다. 폼페이 역에 내리자 그는 벌써 피로하다. 기차역에서 내리면 바로 폼페이 유적의 서쪽 정문이다. 그곳에서 유적의지도를 하나 산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유적은 A.D. 92년까지는 하나의 도시였으므로 자칫하면 미아가 되어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고 여행 안내소도 경고하고 있었다. 4월이면 아직 성수기가 아니다. 하여 유적지는 한산하다. 화산암을 걷어내고 발굴한 도시에 가로수가 있을 리 만무하므로 강렬한 햇빛은 그대로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그는 어지럽다. 그의 눈앞에 1900년 전의 도시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나무도 없고 차양도 없다. 대리석과 벽돌로 만들어진 , 반쯤 무너진 건물들만이 휑뎅그렁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제 지도를 펼쳐본다. 지도는 친절하게 폼페이의 구석구석을 안내하고 있다. 이곳은 우물 , 이곳은 광장 , 이곳은 연극을 관람하던 노천극장 , 이곳은 주거 지역 , 이곳은 사람들이 모여 대소사를 논의하던 포럼 등등등. 지도를 따라 그는 서서히 죽은 자들의 도시로 들어간다.
물이 나오지 않는 우물 앞에서 그는 한참을 서 있는다. A.D. 92년에는 이곳에서도 물이 솟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했겠지. 도시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주군가는 열변을 토했을지도 모르고.......... -191-
<<앨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김영하 소설집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