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면 그리운 땅 - 섬진강 유역]- 어른노릇 사람노릇 - 박완서 지음
- [생각나면 그리운 땅 - 섬진강 유역]
<섬진강의 첫인상>
'강변 살자' 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섬진강을 떠올리곤 한다. 섬진강을 보기 전부터였다. 휜 모래빛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리움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섬진강은 가보기 전부터 내 안에 이미지로 존재하던 강이었다. 그렇지만 저절로 이미지가 형성된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섬진강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고,그들잉 섬진강의 인상을 말할 때는 딴 명승이나 절경을 말할 때하고는 전혀 다른 짠한 그리움 같은 게 배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섬진강과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7,8년 전쯤 될 것이다. 진주까지 볼일이 있어서 갔던 길이었다.동행이 있었는데,그가 하루를 더 잡아 쌍계사에 들렀다 가자고 꼬드겼다. 그는 섬진강보다는 쌍계사 벚꽃길을 더 염두에 둔 것 같았다. 마침 화창한 봄날이었다, 하동을 거쳐 화계장터까지 덜덜거리는 시외버스를 탔다. 그때만 해도 마을 사람들잉 손만 들면 버스가 서던 때였다. 버스도 더디고 봄날도 더디었다. 황혼이 마냥 길게 꼬리를 끌고 도무지 깜깜해질 줄 몰랐다. 옆구리읭 섬진강을 낀 길은 아마 밤새도록 그만큼만밖에 안 어두워질 것 같았다. 멀리 가까이에서 벚꽃인지 배꽃인지 모를 휜 꽃들이 분분히 지고 있었다. 그런 희뿌염 대문에 하늘에 달이 있는지 없는지 살필 것도 없이 달밤이려니 했다. 달밤의 섬진강은 청승맞고도 개울물처럼 친근했다.
................옛날 돌다리나 나무다리처럼 난간 없이 낮게 걸린 다리가 있길래 내려가보았다. 양회다리였다. 그러나 다리 한가운데서 내려다본 섬진강은 역시나 섬진강이었다. 밑에 깔린 자갈을 일일이 셀 수도 있을 만큼 투명하고,송사리 떼가 희롱하듯 노니는 것은 물풀이나 자갈이 아니라 거꾸로 잠긴 푸른 하늘 위 나부끼듯 가벼운 새털구름 사이엿다. 송사리도 그쯤 되면 신선놀음 아닌가.[어른노릇 사람노릇 - 박완서 지음]-181~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