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 / 어른노릇 사람노릇 - 박완서 지음
- 어른노릇 사람노릇 - 박완서 지음
-151111대출받고 읽음. 큰 글자책이라 읽기가 어색했지만,편했다.
- 반공이 국시가 되고,빨갱이로 모는 게 정적을 숙청하는 가장 간단한 수단이 되어도 우리는 수굿이 할 말을 잃었다. 어떻든 공산치하보다는 낫다는 걸 몸소 체험한 뒤였으므로,그런 세상에 살아 남은 우리는 결혼을 하고,자식새끼를 낳아 식구를 불리고,자식이라도 좋은 세상 보게 하려고 마소처럼 일해서 번 돈을 교육비에 아낌없이 부었다. -21-
- 그렇게 기른 자식들이 자라서 이제 제 자식을 거느리고,제 자식 귀한 줄만 알지 부모는 쉰밥 알 듯하면서,일과 여가를 적당히 즐기는 한창 나이가 돼 있는게,우리 육십 대의 한심한, 그러나 아직은 동정 받고 싶지 않은 평균치의 처지이다. -23-
- 방에 웃풍은 세도 포대기를 깔아놓은 아랫목은 장판지가 검게 변할 만큼 따끈따끈 했고, 입에서 시루떡 같은 입김을 내뿜으며 학교 갔다 온 아이들은 곧장 안방으로 들어와 포대기 밑에 발을 집어넣었다. 온 가족이 아랫목에 발을 넣고 서로 몸을 부비며 따뜻한 군고구마라도 먹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한겨울에도 발 벗고 살면서 냉당고문이나 수없이 여는 요새 아이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59-
- 보라색 맥문동 꽃은 장마에도 짓무르지 않고 기다란 꽃송이를 수직으로 쳐들고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게 마치 점화를 기다리는 축제의 양초처럼 보였다. -135-
- [생각나면 그리운 땅 - 섬진강 유역]
<섬진강의 첫인상>
'강변 살자' 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섬진강을 떠올리곤 한다. 섬진강을 보기 전부터였다. 휜 모래빛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리움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섬진강은 가보기 전부터 내 안에 이미지로 존재하던 강이었다. 그렇지만 저절로 이미지가 형성된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섬진강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고,그들잉 섬진강의 인상을 말할 때는 딴 명승이나 절경을 말할 때하고는 전혀 다른 짠한 그리움 같은 게 배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섬진강과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7,8년 전쯤 될 것이다. 진주까지 볼일이 있어서 갔던 길이었다.동행이 있었는데,그가 하루를 더 잡아 쌍계사에 들렀다 가자고 꼬드겼다. 그는 섬진강보다는 쌍계사 벚꽃길을 더 염두에 둔 것 같았다. 마침 화창한 봄날이었다, 하동을 거쳐 화계장터까지 덜덜거리는 시외버스를 탔다. 그때만 해도 마을 사람들잉 손만 들면 버스가 서던 때였다. 버스도 더디고 봄날도 더디었다. 황혼이 마냥 길게 꼬리를 끌고 도무지 깜깜해질 줄 몰랐다. 옆구리읭 섬진강을 낀 길은 아마 밤새도록 그만큼만밖에 안 어두워질 것 같았다. 멀리 가까이에서 벚꽃인지 배꽃인지 모를 휜 꽃들이 분분히 지고 있었다. 그런 희뿌염 대문에 하늘에 달이 있는지 없는지 살필 것도 없이 달밤이려니 했다. 달밤의 섬진강은 청승맞고도 개울물처럼 친근했다.
................옛날 돌다리나 나무다리처럼 난간 없이 낮게 걸린 다리가 있길래 내려가보았다. 양회다리였다. 그러나 다리 한가운데서 내려다본 섬진강은 역시나 섬진강이었다. 밑에 깔린 자갈을 일일이 셀 수도 있을 만큼 투명하고,송사리 떼가 희롱하듯 노니는 것은 물풀이나 자갈이 아니라 거꾸로 잠긴 푸른 하늘 위 나부끼듯 가벼운 새털구름 사이엿다. 송사리도 그쯤 되면 신선놀음 아닌가.-181~190-
-<생각을 바꾸니> ;
한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말의 토씨 하나만 바꿔
도 세상잉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손바닥의 앞과 뒤는 한 몸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뒤집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먼 사이이기도 하다.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잉 아닐까. 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싶지만,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 -227-
- <잔소리꾼 할머니가 손녀에게>
정말 핏줄은 못 속인다더니 솔잎 떨어진 나무에서 솔잎 나고, 은행잎 떨어진 자리에서 은행잎 나듯이 늙은이는 떠나도 아주 떠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닮은꼴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떠나는 거로구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도 있듯이 무심한 식물도 그렇게 해서 종족이 이어져 내려오고 삶의 목적잉 온통 종족 보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생물계의 모든 현상 아니니?-229-
- <아들의 부모 노릇> ;
아들이나 딸이나 성인이 되면 똑같이 부모를 떠나 이성과 한몸이 되어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그 새로운 가정이 부모 보기에 예쁘고 대견하고,자나 깨난 잘되기를 기원해 만지않는다. -279-
-...........-280-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