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낯선 곳 - 박성원 지음
-[어느 날,낮선 곳 -박성원]
그날은 무척이나 더웠다. 흘러내리는 촛농처럼 몸이 축축 처지던 날씨였다. 하루에 기차가 한두 번 정도 정차하는 간이역 부근이엇다. 철로는 끓고 잇는 용광로 같았고,역사 안은 한증막처럼 더웠다. 땀방울처럼 굵은 아지랑이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역사를 중심으로 단층자리 건물들잉 드문드문 서 있었고,포장된 도로가 일이 킬로미터쯤 이어져 있다가 나머진 흙길로 뒤덮여 있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카페에선 조용하게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e River] 란 노래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The River] 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엿다. 신기한 마음에 나는 곧바로 카페로 올라갔다. 카페는 이 층이었다. 계단에선 건초 냄새가 풍겼다. 문을 여고 들어갔을 때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242-
- 여자는 턴테이블로 가더니 리 오스카의 음반을 올려놓았다. 잠시 트랙을 긁는 잡음이 일더니 곧이어 금방이라도 아침 해가 떠오를 것만 같은 하모니카 소리와 함께 [My Road] 가 흘러나왔다.
.........나는 휘파람으로 따라 불렀고,여자는 작은 소리의 허밍으로 흥얼거렸다. 나의길.나의길.나의 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모니카 소리와 함께 수없이 많은 길들이 보였다. 내가 걸어왔던 길.여행을 다니면서 수없이 걸었고,지나쳤고,보았던 그 길들.비에 젖은 길.흙먼지가 피어오르던 길. 새벽이슬이 눈물처럼 내려앉아 있던 길. 버스가 지나간 뒤 움푹 패여 있던 길.술에 취해 내가 주저앉아 있던 길. 도시의 내온사인을 받아 멍든 것처럼 보이던 길.누나의 손을 잡고 학교로 걸어가던 길.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던 골목길.자전거를 타던 길. 흰 눈에 뒤덮인 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던 길.어머니와 시장 보러 가던 길. 친구들이 시위를 하던 길. 내 발길이 닿았던 그 모든 길들. -246-
- 하루에 한 번씩은 꼭 [My Road] 를 듣는다고 했다.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러나 답은 언제나 없다고 했다. 장사는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도시나 큰 마을로 떠나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248-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고,나는 음악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었다. 방 안에 있던 사물들잉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희미해져가는 어둠 속에서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사물들의 색깔들이 검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더니 이내 제 색을 띠기 시작했다 방 안은 사물들의 제 색 찾기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조용했고,어디선가 달그락거리며 새벽밥을 준비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전조등을 켠 버스가 지나갔고,거리르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 보였다. 새벽의 거리는 슬퍼 보였다. 나느 라디오를 끈 다음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물을 마시면서 거리와 길을 마냥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나는 창문을 닫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니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끌림에 달라붙어 나는 흰 종이에 글을 써내려갔다. 글을 쓰면서 ,이것이야말로 아주 긴 여행이 될지도 몰라, 라고 중얼거렸다.아침의 부산스러움이 창밖에서 어른거렸고 그날 한밤중이 될 때까지 나는 쓰고,쓰고 또 썼다. 지구는 그날도 자전하고 있었고,그 자전에 몸을 맡긴 채 길 위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