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기/ 내 마음의 무늬-오정희지음
[나이 드는 일 - 내마음의 무늬/오정희]
연휴를 맞아 집에 다니러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자식들을 역까지 바래다주고 오는 길인데 그들과 함께 역으로 나오면서 보았던, 길 양옆의 화사한 코스모스 꽃 빛깔이 그 잠깐 사이에 조금 어둡게 시르 죽어 시든 듯했다. 마음 탓일 게다. 잠깐 사이이건만 자식들을 보내고 빈 차로 돌아오는 길에 눈에 닿는 풍경은 그들과 함께일 때와는 다르기 마련이다.
빈 차라니! 엄연히 남편과 내가 타고 있고 자식들 만 빠져 나갔을 뿐인데도 그 빈자리가 온통 차 안을 점령해서 빈 차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이다.
오래전 저녁밥을 지으면서 이청준 선생의 [눈길] 이란 소설을 읽다가 소설 속의 어머니가 이른 새벽, 먼 길 떠나는 어린 아들을 차부까지 배웅하고 그 길ㄹ을 되짚어 혼자 돌아오는 길에 그때까지 눈길에 그대로 오목오목 찍혀 남아 잇는 어린 아들의 발자국을 보며 눈물짓는 대목에서 나 역시 걷잡을 수 없는 눈물바람을 하느라 밥을 다 태웠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눈시울이 따거워지고 가슴이 싸해진다.
조금 전까지 자식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주고받고 농담도 나누며 웃던 남편과 나는 둘 다 누가 입을 봉해버리기도 한 양 말이 없다. 오래 함께 살아온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이란 그리 불편하거나 어색할 일도 아니건만 나는 왠지 대화를 나눠야 할 필요성를 느끼며 가까스로 화제가 될 만한 것을 찾는다.
"이젠 정말 가을이 깊어지네요"
"그렇군"
궁색하게 입을 뗀 말에 남편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세월이 참 빨라요"
"정말 그래.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대답하는 그의 표정이 심각하다고 하리만치 진지해서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간신히 꺼낸 짧고 무심한 대화에서 보이는 , 어울리지 않게 진지하고 커다란 반응에서, 나는 이 순간 우리가 서로에게 다정해지고 친절해져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래, 우리는 빈둥지의 쓸쓸함과 나이 들어가는 일의 스산함, 서로의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서글픔에 대해 따뜻이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