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장자,삶의 도를 묻다 - 프랑스아 줄리앙 지음, 박희영 옮김
-151020대출 받음.
"프랑스인이 본 장자의 사상은 어떤 것인가?"
- 독서는 정신을 함양시킨다. -32-
*함양이란? ; 涵養이란?
- 만약에 물 위에서 표류하던 배가 우리의 배에 부딪혔는데 그 배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면,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누군가가 배에 타고 있었다면,우린 그 사람에게 거칠게 말을 함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욕설을 퍼부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사실 갈등은 바로 이러한 의도적.감정적 자아의 차원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단계가 일단 지나가면,아니면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이러한감정이 일어나는 단계의 이면으로 물러설 줄 안다면,우리는 힘들여 강요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잇게 된다. -92-
- 싸움닭을 각각의 단계마다 그리고 열흘 단위의 각 기간마다 어떻게 훈련시켜야 최상의 싸움닭으로 길러낼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계획표가 제시된다.
초보 단계의 싸움닭은 아직 허황되고 오만으로 가득 차,자신의 힘만을 맹신한다.
다음 단계의 싸움닭은 다른 닭들의 그림자나 조그만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다음 단게의 싸움닭은 매우 강렬한 시선과 지나치게 힘찬 기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 단계에 도달해 다른 닭들이 아무리 울어대도 외견상 아무런 변화를 안 보일 정도의 무심의 경지에 이르면, 이 싸움닭은 비로소 싸울 준비가 된 것이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그 닭은 마치 '나무로 만들어진 닭" 처럼 태연자약하게 보닌다. 이렇게 "싸울 수 있는 훈련이 온벽하게" 이루어지면,다른 닭들은 이 닭에게 "감히 대들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피하기만 하게 된다."이 훈련된 싸움닭이 다른 닭들에게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다른 닭들은 이 닭에게 대들어보려고 하지도 못한 채 줄행랑을 쳐버린다.
...........사실 진정한 방어는 싸우지 않는 것이요,싸우지 않는 것은 공격당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 스스로가 가장 강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접근 불가능한 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나의 반응을,아예 타인이 나에 대한 공격을 감히 시도하지 못할 정도로,마치 "나무로 만들어진 닭" 처럼 태연자약의 무심함을 통해 나타내면,나느 타인의 공격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그의 반응 자체를 제압함으로써 나를 공격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를 단숨에 무력화하게 된다. 그러면 타인은 나의 무반응에
당황하게 되고 꼼짝 못하게 되지만,나는 오히려 나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게 된다.-94~95-
- 물이 응축되어 결국에 "얼음으로 응고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 또한 "인간으로 응축되는 " 것이다. 그리고 얼음이 녹아 다시 물로 되는 것과 같이,인간은 죽을 때 해체되면서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고 천지사방에 퍼져 있는 에너지의 흐름 속으로 융합되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에너지의 흐름이 인간의 몸속에서 불투명하게 구현된 상태로부터 벗어남을 통해,끊임없이 세계를 관통하면서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126-
- 옛날에 한 목공은 마치 신이 빚어낸 것처럼 너무나 훌륭한 종 받침대를 만든 다음에 말하길,'세상사로부터의 초연함과 '잊어버림' 을 통해 내가 깨달은 진리는 나의 '호흡에너지' 를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목공의 이러한 고백에 가장 훌륭한 해석을 했다.
"각각의 존재는 같은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잇다. 평범한 사람은 이 에너지를 수만 갈래로 나누어 소모한다. 나는 모든 에너지를 단 하나의 방향,즉 그림에 쏟아붓고,그것을 위해 나머지 것들은 모두 희생시킨다"
내가 생각하건대,최대의 걸작을 창조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러한 피카소의 말, 즉 걸작을 창조하려면,우리는 자신의 호흡 에너지를 낭비하지 많아야 한다. 라는 것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우리는 기꺼이 금욕적으로 생명력을 분산시키는 모든 일상적 에너지 소비를 삼가고,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시켜야만 한다. -129-
- 처음에 백정이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소뿐이었는데,그 후에는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은 그가 도축술을 익히던 초기에는,그의 눈에 단순히 덩어리 전체로서의 소만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소는 백정의 전 지각 영역을 꽉 채워,그의 좀 더 내적이고 강렬하며 섬세한 이해를 방해하는 살덩어리로서 단순히 그의 앞에 주어진 어떤 것일 뿐이었다. 그러난 세월잉 흘러 그의 지각 능력이 점차 날카로워지자, 그는 소 몸의 불투명한 덩어리를 관통해 소 내부의 관절들까지도 지각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또한 예술가에게도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143-
- 도공 공수가 도면을 그리며 줄을 그으면 그림쇠나 곱자보다도 뛰어났다. 그의 손이 그림쇠와 곱자와 함께 변화하므로 마음에 생각 따위가 깃들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은 하나가 되어 막히지 않는다.
"발을 잊는 것은 신이 꼭 맞기 때문이고,허리를 잊는 것은 띠가 꼭 맞기 때문이다.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자연스러움에 알맞기 때문이다. 마음이 변동하지 않고 외물을 따르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처지에 편히 있으며,거기에 알맞기 때문이다."-157-
-...........-244-끝.어려운 책이다. 그냥 읽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