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 김득신........ 백이전 읽고서......
-출전 ; 백곡 김득신.... 조선 최고의 독서광
http://cafe.daum.net/byhdg/BGOD/918?q=%B1%E8%B5%E6%BD%C5%20%2B%20%B9%E9%C0%CC%C0%FC&re=1
-김득신은 지혜가 부족하고 재주가 몹씨 노둔하였는 데 외어 읽기를 부지런히 했다.
사마천의 사기 中에 [백이전]을 1억1만 3천 번(11만 3천 번) 을 읽기에 이르렇다.
-진주목사 김시민의 손자이고, 부제학 안흥군 '김치'의 아들이다.
- 안흥군 '김치' 는 아들의 '노둔' 함을 나무라기 보다는 오히려 꾸준히 성실하게 공부하는 자세를 남들에게 자랑하였다. 또 科擧는 커녕 나이가 2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을 지은 자식을 보고서도, 꾸짖기보다는 반드시 과거를 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니 더 노력하라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아버지의 변함없는 믿음과 지원 때문에 김득신은 자신감을 잃지 않고 더욱 학문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문에 재주가 없으니 글공부를 때려치우라는 주변 사람들의 끊임없는 '힐난과 멸시' 속에서도 김득신이 굳이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 취묵당 ; 김득신이 만년에 머물렀던 곳으로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괴강 근처에 있다. 취묵당을 다른 이름으로 '억만재' 라고 하는 것도 글자 뜻 그대로 김득신이 글을 읽을 때 1만 번이 넘지 않으면 멈추지 않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김득신은 역사상 유례가 드물게 노둔하지만, 그 노둔함을 딛고 독서광이 되어 걸출한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거듭난 '백곡 김득신' 의 자취가 취묵당에 오릇이 전하고 있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독수기讀數記' 는 지나는 시인묵객으로 하여금 독서의 힘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여 한없이 노력하였던 그 흔적은 오만하고 거만한 부류의 사람들을 겸허하게 해 준다. 끝.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