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90 / 삼국유사 - 김원중 엮고 옮김

최해식 2015. 6. 25. 05:30

- 삼국유사는 문학 작품인 동시에 신화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또 여러 가지 기이한 서건들을 집대성한 奇書이자, 승려 이야기를 담고 있는 불교 서적이기도 하다.  또  우리나라 고대 왕조의 흥망성쇠를 서술한 역사서이면서 일반 서민의 이야기가 모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삼국유사]의 어디를 펼쳐 놓고 읽어 보더라도 소설보다 재미 있을 수밖에 없다. -8-

 

 

-나는 새벽 세 시에 일어난 고전을 번역하고 연구하며 보냈다.

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이루어지는 일은 없는 법이다. -10-

 

- 우리는 왜 [삼국유사]를 다시 읽어보아야 하는가?

시조들의 탄생과 건국이야기를  기이한 옛이야기로만 생각하는 것은 [삼국유사]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을 야사라고 폄하해 버린다면 우리 스스로 문화유산을 훼손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15-

 

- 신라인의 기개를 왜국에 떨치다.(?)  - 김제상- :

390년 신라17대 내물왕 때 3子 '미해'를  왜왕에게 볼모로 보냈다.

419년 18대 눌지왕 때 동생 '보해'를 고구려 장수왕에게 볼모로 보냈다.

427년 삽라군(=양산 군) 태수 '김제상'을  두 왕자를 구하러 보냈다.-71-

 

- 김유신은 각간의 벼슬을 한 김서현의 맏아들로 진평왕17년(595년)에  밤하늘에 늘 자리 잡고 있는 북두칠성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다. 이 때문에 등에 일곱 개의 별 무늬가 있었다. -79-

 

- 진덕왕이 죽은 뒤, 김춘추는 654년에 임금의 자리에 올라 8년 동안 다스렸다. 그리고 661년에 죽었다. 이때 나이는 59세였다. -308- 

 

- 신라 시대의 상수리 제도 :

신라의 문무왕때에는  "해마다 각 주의 관리 한 사람을 부럴올라오게 하여 중앙의 여러 부서를 지키게 하는 제도" 가 바로 상수리 제도이다.  지방 세력가의 자식을 중앙에 불러들여 머물게 하는 일종의 인질제엿다.

이는 고려 시대 기인 제도 의 전신으로  지방의 권력을 통제하고  중앙의 힘을 강화가기 위한 방편이었다. -331-

(** 일본 에도시대 때는 , 번주의 가족들이 1년간 도쿄에 머물러 살게 한 것이  있던데 , 이것도 일종의 인질이  아닌지? 궁금하다. )

 

- 신라 흥덕왕 때, 모량리 사람  '손순'은 남의 집에서 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르 받들어 모셨다.  그런데 손순의 아들이  항상 어머니의 밥을 빼앗아 먹자, 민망하여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는 또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느 다시 모실 수 없소. 이 아이가 어머니 밥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굶주림이 얼마나 심하겟소. 이 아이를 땅에 묻어 어머니의 배를 채워 드리도록 해야겠소." -348-

 

-............-349-끝.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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