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87 / 징비록,못다한 이야기 - 최희수, 조경란 지음

최해식 2015. 6. 9. 01:57

-150719읽음

 

- [징비록]은 임진왜란 전란사로서 역사서다.  1592~1598년 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전황 등을 기록했다. [징비록]의 첫 부분에서  인명의  살상과 토지의 황폐화를 야기한 참혹한 전쟁을 회고하고,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기 않도록  반성해 앞날을 대비하는 반성의 기록을 남긴다고 적고 있다. -21-

 

 

- 1543년 '다네가 섬' 영주가 조총 한자루를 선물로 받아 이 조총은 센고쿠시대라는 일본의  특수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조총수를 대거 양성한 '오다 노부나가' 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센고쿠시대가 종식되었다일본의 역사와 질서가 바뀐 것이다. -48-

 

 

- 1593.1.27일 벽제관 전투에서 이여송이 직접 지휘하는 북방 기병의 절반은 죽거나 다쳤고  휘하 장수 15명이  전사했는데, 이는 조선에 파견된 명 장수의 25%에 달하는 수치였다. 이에 대해 징비록은 철저히 분석,기록하였다. 류성룡의 이 같은 기록은 모든 성공과 실패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그 원인을 파악해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패전한 이여송은  파주로 돌아왔으며  이튿날에는 동파로 퇴각했다. -164-

 

 

- 1598.11.19일 류성룡은 한 달 이상 체임되어 잇다가 영의정에서 파직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임진왜란의 두 영웅이 같은 날 한 명은 조정에서 퇴출되고 다른 한 명는 전사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52-

 

 

- 류성룡은 나아갈 떼와 물러날 때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물러났다. 이후 조정에서 어떠한 부름이 있어도 응하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에 몰두했다.  [징비록]은 그렇게 탄생했다.  대체로 낙향한 1599~1604년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날의 일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한다' 는 [시경]의 말을 제목으로 짓고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국난을 치른 경험을 상세히 기록했다.

1607.5.7일  66세를 일기로 류성룡은 일생을 마쳤다. -266-

 

-.................-268-끝. 그냥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