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45 / 승부에 강한 사람은 우회하지 않는다 - 채 봉석 지음

최해식 2015. 3. 20. 14:24

- 젊다고 생각하신 분이 벌써로 자서전이라 생각했다

조금 읽어보니 쓸만도 하더라

나도 언제간은 자서전을 한번 써 봐야갰다.

 

-부안 백산평야는 1894년 1월 전봉준 장군의 영도아래 동학 정월봉기의 역사적 현장이다.

매창(본명;李楏生)은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개성의 황진이 와 더불어 조선 名妓로서 쌍벽ㅇ르 이루었다. 송도에  박연폭포가 있으면 내 고향 부안에는 내변산 제1의 직소폭포가 있고, 송도에 서경덕과 황진이가 있었으면 내 고향 부안에는 부안 김씨를 명문 대성을  만든 김구(金坵)와 이매창이 있었다.    김구(金坵) 와 이매창은 내변산의 직소폭포와 더불어 '변산3절三絶' 로 불린다.-35-

 

 

(** 이  김구(金坵) 가  백범 김구(金九) 인가? 했다. 아니라니 다행이다.)

[퍼온글] http://www.shinmoongo.net/sub_read.html?uid=36265

"부안의 삼절, 직소폭포 기생 '이매창'
[송기옥 칼럼] 10승지지 변산반도 부안에는 송도 3절 대신에! "
 

 

 

부안에는 '부안 3절'이 있다. 고려의 옛 서울 송도의 3절 즉 서경덕 벽계수와 염문을 뿌렸던 황진이는 잘 알려져 있지만, 부안의 3절은 그렇게 많이 아는 이가 없다. 송도의 3절인 박연폭포와 황진이, 황진이의 교태에 암하노불(岩下老佛)같은 30년 수도승 지족선사(知足禪師)는 파계 당했으나, 세상의 부귀영화도 다 버리고 처사(處士)로써 주자(朱子)의 모방 없이 독창적이고 사색적인 성리학을 연구하여 이이(李珥)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선생을 존경한 황진이...

부안의 3절로 직소폭포와 기생 이매창과 지포(止浦)김구(金坵1211-1278)선생을 들고 싶다. 박연폭포(朴淵瀑布)는 일명 城山폭포라 하여 황해도 개풍군 북부 천마산에 있는 높이40m폭포다. 이에 비해 부안의 직소폭포는(直沼瀑布)는 30m로 내소사 뒷산 관음봉아래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봉래구곡(蓬萊九曲)을 이룬 폭포로써 갖출 것을 다 갖춘 변산의 제1경이다.


송도의 명기 황진이(黃眞伊)는 재색과 한시에 뛰어났다고 한다. 이에 쌍벽을 이룬 부안의 명기 이매창(李梅窓1573-1610)역시 한시(漢詩61수)와 거문고와 가창에 뛰어나 당대의 이름난 학자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과의 교분이 두터웠으며, 매창이 38세 젊은 나이로 죽자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란 시를 지어 그 당시 있을 수 없는 천한 기생에게 바칠 정도 였으며, 4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매창의 시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매창에게 파계 당한 정인 유희경(劉希慶1545-1636)은 지체가 낮은 노복출신인 천민이었으나 시문을 잘한 충직한 사람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해에 잠시 만났으나 1,592년 의병을 모아 전쟁에 나갔다.
 
매창은 아마도 정인을 사모하는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 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더라.’유명한 시를 남겼다. 여기서 유희경을 부안의 3절로 세우는 이도 있지만, 나는 송도의 충신 정몽주와 대등 할 만 한 국난을 극복한 고려 원종 때의 지포 김구선생을 들고 싶다.

지포 선생은 12세에 진사시(進士試)와 같은 조사시(造士試)에 합격한 신동(神童)으로 고종19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제주판관,한림학사,보문관 태학사에 이르렀으며 원나라 다루하치(達魯花赤)에 간신배들이 붙어 국왕에게 예를 올리지 아니함에 이들 권세에 눌려 아무도 나서지 못했는데 김구 만이 이들을 탄핵하여 예를 올리게 하였으며,

1,263년(원종4년) 원의 세조 홀필렬(忽必烈)은 고려 조정에 인질과 병정과 처녀를 징발하여 바치라는 명령에 왕을 비롯한 문무백관이 무서워 벌벌 떠는데, 오직 김구선생만이 목숨을 걸고 홀필렬에게 ‘그 같은 가렴(苛斂)에는 순응 할 수 없노라’는 표문을 지어 보냈는데 원 세조는 김구의 충정어린 담대한 문장력에 감동한 나머지 오히려 양 500마리를 포상하였으며, 나라를 위기에서 건진 보기 드믄 충신이었다.

지포 선생은 1,278년 고려 충렬왕 4년 68세로 세상을 떠나니 조정에서는 그의 높은 학문과 국난을 위기에서 극복한 공적을 기려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지금의 변산면 지서리 지지포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사당에는 지포 문집과 묘소와 공적비가 보존되고 있어 부안군민과 그의 후손들은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유서 깊은 고려의 475년간의 도읍지 송도의 삼절에 어찌 지포 (止浦)김구(金坵)같은 고려인의 충절과 얼이 숨 쉬는 부안 삼절의 인물로 삼지 않을 까. 비록 멋스럽고 사치스런 기녀와의 염문(艶聞)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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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창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당시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그녀를  만나러 부안을 찾았는데 , 그들 중에 허균도 있었다  허균ㅇ으 아예 부안에 눌러 살았고,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 을 짓기도 했다.-36-

 

 

- [장사의 신 호설암]이란 책은 청나라 때의 거상 호설암(1823~1885)은 의 삶과 철학이 담겨 있다.

"성공하는 인생은 자신감에서 시작된다. 성실과 신용으 간판을 만들어라,  변화가 클수록 기회도 많다.  자신과 과감히 맞서라.  일단 생각을 정한 후 과감하게 나아가라.  생각한 것은  곧바로 맞서라.  인재를 모으는 일에 돈을  아끼지 마라.  '머니는 풀고 체면은 거두워라'   " 

 

조선 중기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책 [상도] 에도

"장사란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 라고 했다,

 

장사란 고독하고 힘든 사업이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사업을 하면 쉽게 돈을 모으고 부자가 되는 줄로 만 안다.

사업은 자전거르 타는 것과 같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발의 힘을

이용하여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자전거가 신나게 달릴 수잇다.  페달을 밟지 않고 서있으면 자전거는 넘어지고 만다. 이는 사업의 생명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178~179-

 

-....-287-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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