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980/ 혼불 4 - 최명희 지음
최해식
2023. 7. 25. 14:01
- "아 머이든지 질 나먼 좋제에. 귀목에 먹감나무 장롱이어야만 좋응가아? 암만 하찮은 바가지 한 개라도 내 손에 오래 익으면 살갑고, 이쁘고,금밥그륵을 준대도 안 바꾸게 정들어서 그 바가지 한 개 갖고 오만 짓을 다 허는 사람도 있잖응가.-171-
-묵은 겨울의 삭은 잿빛 주저리를 벗기며 한쪽부터 수줍게 트이는 봄빛이, 아직은 얼른 나서지 못한 채 처마끝에서 머뭇거리고 있을때, 초가지붕 짚시울에 엉겨 있던 눈이 녹아 탐방 탑방 떨어지는 물소리를 신호로, 오류골댁은 겨우내 덮었던 이불과 요의 호청을 뜯어 칼칼이 빨아 냈다.-188-
-먼 데 산줄기와 굽이를 담채(淡彩) 붓갈피로 지우면서 누가 눈치 못 채게 다가온 봄이 이제는 가차이 노적봉에까지 스미어, 솔빛이며, 나뭇잎 다 깎아 버렸던 삭모(削毛)의 겨울가지 날카로운 끄트머리에 아슴한 연두 물빛 돌면, 간짓대 받쳐 세운 빨랫줄에는 두두두둑, 투둘,물방울 떨어지는 호청이 희고 눈부신 휘장처럼 펼쳐져 널리었다.
"봄은, 먼 산에 아지랭이 언덕 위에 풀빛으로도 오지마는 부지런한 아낙네의 호청 빨래 정갈하고 한가로운 낙수 소리로 오느니"
한사(寒士) 남평 이징의는, 이른봄의 얇은 종이 같은 박지(薄紙) 햇볕을 함뿍 빨아들여 온 마당 가득히 하얗게 채우는 호청을 부시게 바라보며, 남평댁한테 그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189-
-마당에 조랑조랑 다닥다닥 꽃핀 듯이 열린 앵두를 따서 앵두화채를 만들었고, 앵두편과 증편을 쪄 큰댁에 보낸 다음 손님들한테 대접하며 웃고 놀았다..................."단오날 정오에 캔 약쑥 익모초가 제일 좋지. 약효가 그만이라"............익모초(益母草).암눈비앗. 이름 그대로 부인들, 특히나 산모와 어머니를 이롭게 하는 이 월년생초본 두해살이 풀은 네모난 줄기와 부드러운 순,꽃,잎,열매 모두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약으로 쓰이었다..........."유월유두날 익모초를 먹으면 더위를 안 탄단다."-191-
(출전 : 하얀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