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7/ 한국근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 - 오영섭 지음
-안중근의 부친 안태훈(1862~1905 )은 황해도 신천군의 자산가인 부친 안인수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어렵게 취득한 진사라는 직함을 활용하여 향촌사회에서 유력자로 행세하였다.-221-
**안인수▶안태훈 ▶안중근
- 안태훈의 선조들은 1894년 과거제도가 공식 폐지되기전까지 무과를 통해 입신양명을 도모한 전형적인 무반 가문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무력을 숭상하고 무력의 가치를 인정하는 상무 풍조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그들의 상무적 기질과 가풍은 1894년 안태훈 일족의 동학군 진압활동, 대한제국기 포군을 앞세운 천주교 비호활동, 1907~1909년 안중근의 의병활동과 이토 히로부미 포살의거, 안명근의 조선총독 암살 미수사건, 1930년대 이후 안공근의 특무공작단 운영 등에서 빛을 발하였다. -224-
-김구의 술회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안태훈이 중국 진나라 말엽의 전설적 병법가인 황석공의 [소서] 구절을 자필로 써서 벽장문에 붙여두고 술기운이 있을 때마다 낭독하였다는 대목이다.-225-
*** 황석공의 [소서]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dsdcc&logNo=221292367068
"윗사람이 모범이 적으면 아랫사람의 의심을 받고, 윗사람을 가벼히 여기면 죄를 낳고, 아랫사람을 없이 여기면 친함이 사라진다." (소서-안례편)
-1894년 동학농민군의 봉기는 민씨세도의 부정부패, 지방관과 양반지주의 탐학, 동학도에 대한 탄압, 이서층의 발호, 방곡령에 따른 반일 분위기 등에 반발하여 각지에서 일어났던 민란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다만 1894년 이전의 민란이 고을 차원의 지역적인 문제나 지방관료의 타도 등을 내세웠다면, 1894년의 농민봉기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 전국적 차원에서의 개혁을 염원한 것이었다. -233-
-한인애국단은 임시정부 산하의 비밀결사 단체였으나 실제로는 김구의 사조직처럼 운영되었다. .......한인애국단의 중요한 일들은 안공근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1931년 12월13일 이봉창의사의 선서식이 안공근의 집에서 거행되었고, 또 윤봉길의사가 출정에 앞서 태극기를 들고 찍은 사진은 안공근의 제2남 安樂生 이 자기 집에서 촬영한 것이다. -290-
-안공근이 안중근의사의 막내 동생이라는 시실은 안중근의거 후 그의 인생행로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엇다. 안중근의 동생으로서 안공근은 모든 한국인들과 독립운동가들에게 흠모와 존경을 받았던 반면, 일본근대의 원훈을 포살할 흉한의 동생으로서 안공근은 일제의 가혹한 취체와 감시를 견뎌내야만 했다. 안중근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안공근에게 영광과 시련을 동시에 안겨다 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엇다. -304-
-..........-497-끝.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