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 산책하는 마음 - 박지원 지음
- 우리는 모두 거품처럼 흩어지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 신기루 같은 세계를 만질 수가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찰나의 시간만큼 변하고 있고 파괴되고 있다. -22-
-완벽하게 채워진 목표, 완벽하게 채워진 24시간은 그 자체로 우리를 고장 나게 만든다. 그런 삶의 방식은 예리한 핀셋처럼 우리를 끊임없이 '현재'에서 뽑아내며, 저 완벽한 목표를 향하여 좀 더 뛰어나고 빈틈없는 삶을 살라며 닦달하곤 할 테니까........... 나는 반절만 되어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미처 다 피지 못한 꽃도 저 나름으로는 아름답다. -66-
-나는 지금 이 글을 강원도 동해시의 일출을 바라보며 쓰고 있다. 새벽 6시가 가까워져 오는 검푸른 시간이다. 2018년의 여름은 기록적으로 뜨거웠는데, 9월의 초입을 맞한 이 시각 동해틀 무렵엔 산들거리는 가을 바람이 조금 쌀쌀할 정도로 내 몸을 휘감고 있다. 무더웠던 나날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더위의 감각은, 마치 마법이 풀린 <미녀와 야수> 의 세계처럼, 신비할 정도로 스르륵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88-
-홍콩의 유튜버 브랜든 리 가 <서울 웨이브>에서 소름 돋게 묘사했던 그대로, 우리는 빠른 인터넷과 휘황찬란한 밤의 문화,치열한 경쟁의 삶에서오는 짜릿한 괘감을얻은 대신에 딱 그만큼, 크로아티아와 오스트리아 소도시의 저 고요하면서도 깊이감 있는 수천 년의 역사적 감각을 잃었다. -153-
-좋은 글은 그 글을 읽는 내게 정갈히 스며든다. 타인을 성마르게 독촉하거나 가르치려는 의도 없이 담담하면도 꼼꼼히 자신의 내면을 풀어내는 글을 읽을 때면, 나는 속으로 갈채를 보내며 '아, 참 정갈하다'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 글에는 작가 자신을 과시하고 뽐내려는 욕망 대신, 세상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매와 깊은 겸손함이 배어잇다. 소설가 박완서와 영문학자 장영희,불문학자 황현산 등등의 글은 내게 이런 감정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199-
-'인생의 크고 작은 목표'들은 소중한 것이다. 목표를 향한 부단한 노력은 절대로 그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힘을 믿으며 성실하게 살아내는 한, 그의 목표들은 언젠가 마법처럼 이루어질수 있다. ......'마법의 힘' 은 다른 어딘가에 멀찌감치 존재하는게 아니라, 결국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문학과 영화 속에서 만나는 마법은 그가 마법처럼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건 분명 그가 오래도록 꾸준하고 치열하게 쌓아왔던 시간의 힘 덕택이리라. 그 힘은 하루하루의 단위라는 외피를 두르고 기나긴 세월 속에 잘게 쪼개어져 있는 게 분명하다. -203-
-구름 ;
우리는 산책길의 구름을 보면서 자연스레그런 비유를 실감할 수 있다.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그 무엇에도 고정되지 않은 채,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흩어지고 뭉치며 제멋대로 움직이는 구름이 언제나 저기 흘러가고 있으니까. -217-
-산책길에 들을 수 있는 나무의 소리 :
봄의 나뭇잎들이 햇살을 타고 전해주는 경쾌한 소리, 한여름의 나무에서 들려오는 풍성하고 입체적인 소리, 그리고 춥디추운 계절의 메마른 가지들이 무겁게 흔들리며 윙윙대는 소리에는 언제나 미묘하고도 큰차이가 잇기 마련이다. -226-
-"This too shall pass" 라는 페리시아의 격언/속담=adage 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격언은 내가 오늘 밤 산책길에 만난 이런저런 풍경은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 오늘 내가 마주친 사람들도 다르고, 내가 마주친 뭇 생명의 움직임도 하루하루 다르며 언제나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 접한 구름의 모양도, 조용히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빛깔도, 저 구석진 자리에 피어있는 꽃의 모양도 다 조금씩은 변해있다. 그것은 반복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는 말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슬픔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것은 삶에서 언제든 고통이 찾아올 수 있고, 삶은 하나의 순환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삶은 반복되고, 나는 그 반복됨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다.-241-
-......-301-끝.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