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3/조선통신사,일본과 통하다 - 손승철 지음
- 1426년 염포,부산포,제포의 삼포 제도가 정비되면서, 조선에 도항해 오는 모든 왜인들은 이 세 곳의 항구를 통해 조선에 입항하게 되었다. 그리고 입항 목적에 따라 사송왜인, 흥리왜인. 항거왜인으로 분류했다. 사송왜인이란, 사자의 명칭을 띠고 도항하여 오는자이고 흥리 왜인이란, 무역을 위해 도항하여 오는 자를 말하고, 항거왜인이란 귀순또는 귀화를 목적으로 도항해 오는 왜인을 말한다. -83-
- 1482년 일본국왕사 에이코' 가 조선에서 받아 갔던 대장경이 현재 도쿄 시내 한복판의 조조지增上寺 라는 절에 소장되어 있다. -115-
(출전) 도쿄 增上寺; http://cafe.daum.net/culturesightseeing/bnDl/12?q=%EB%8F%84%EC%BF%84%20%EC%A6%9D%EC%83%81%EC%82%AC
- 1597년 정유재란 당시. 형조좌랑이던 강항이 남원에서 군량미 조달을 독려하던 중 영광 앞바다에서 일본군에게 납치디어 일본으로 끌려 갔다. 강항은 2년8개월 간 피로인 생활을 하면서 일본 유학을 진일보시켰다. 강항은 일본 유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주자학을 전수 시켰다. -155-
-19세기를 전후하여 조선인은 위정척사 사상잉 지배하였고, 일본인의 사상적 조류는 조선침략론인 정한론이 지배하였다.
위정척사 사상은 正學을 세우고, 邪學사학을 배척하자는 사상으로 정학이란 소중화 내지는 조선중화주의에 의해 정착된 주자학 일존주의의 도통과 학통을 말한다. .....그러나 조선중화주의에 바탕을 둔 대외 인식은 자기중심주의의 고립주의로 경직화되어, 청 및 일본에 대해 늘 명분론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적인 대응 능력을 둔화시키는 장애요인 되었다. ......조선 후기 일본인의 조선관은 [古事記] 와 [日本書紀]를 계승한 '임나일본부' 설에 의해 조선을 조공국을 보는 것이었다. 조선 멸시관.이다. -208-
- 1872년9월 메이지 정부는 왜관을 점령하였다. 이는 교섭 사절로 위장한 무력 점령이며, 임진대란 이후 250여 년간 통신사 왕래로 지켜온 우호 교린을 배신한 행위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불행한 36년을 경험하고 해방 50년이 지났건만. 21세기가 되었어도 불행한 시대를 청산하지 못하고 또다시 갈등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 일본은 왜, 이유없이, 자민족의 이익만을 위해 한국을 침략하고, 약탈하고, 짓밟는 것일까. 과거의 불행을 몇 번씩이나 다시 반복하는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따지고 싶다. -226-
-..........-227-끝.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