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51/ 임진왜란의 흔적1-김현우 지음

최해식 2018. 11. 25. 19:11

양산 임진왜란의 흔적  ; http://blog.daum.net/chscoral/2186

- 역사를 기억한다는 차원에서 역사현장을 답사했다. -5-


- 日本軍은 1592년 4월 14일 부산에 상륙한 직후 울산, 양산, 김해의 3개 경로로 나뉘어 破竹之勢로 서울을 향해 북상했다.상륙 20일 만인 5월 3일 日本軍은 서울을 占領했다.-28-


- 수영성은 수군의 본영인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진영이 있던 곳이다. 수영성은 임진왜란이후에 지어졌고, 남문은 1692년에 설치되었다. -37-


- 부산진 支城 西門의 양측 성곽에 돌기둥이 하나씩 잇다. 서문 좌측돌기둥은 西門鎖鑰서문쇄약=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  우측돌기둥는 南徼咽喉남요인후=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 국경이다. 라는 의미로 부산이 갖는  국방상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39-


- 칠천량해전은 1597년 7월 삼도 수군통제사 원균이 치른 정유재란 첫 해전이자 일본 수군의 야간 공격을 받아 궤멸당한 해전이다.-53-


- 다대포성 안에는 객사인 懷遠館회원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몰운대로 옮겨져 있다. 원래 다대포 객사가 있어었던 자리는 현재 부산 유아교육진흥원이 자리하고 있다. -133-


- 다대포는 임진왜란 때 격전이 벌어진 곳으로 鄭運은 1592년 9월1일 부산포해전에서 이순신의 右部將으로 군사의 앞에서 분전하다가 적탄을 맞고 전사했다.  9.1일을 양력으로 하면 10.5일 된다.  부산시는 10.5일을 '부산시민의 날' 로 정하여 부산포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鄭運公 殉義碑 는 다대동 몰운대 바닷가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어첨사로 부임하여 그 임지 내의 명소인 몰운대를 택해 정운 공으 공덕을 추모하는 순의비를 세웠다.   해안을 지키는 군부대 안에 위치해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된다. .........1798년 鄭運의 8대손 정혁이 다대포첨사로 부임하여 그 임지 내의 명소인 몰운대를 택해 鄭運 公의 공덕을 추모하는 순의비를 세웠다.-168-


-...........-340-끝. 그냥봄.